오성윤 잡지 에디터
자칫 오해를 살 것 같다. 나는 정확히 어부가 지탄했던 부류, ‘처먹으러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입에 뭔가를 넣는 순간에도 다른 음식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며, 식도락에 해박한 이들을 깔보기는커녕 우러르는 쪽이다. 최근에는 데이비드 장 셰프에게 푹 빠져 있다. ‘어글리 딜리셔스’는 그가 동서고금의 온갖 음식을 파헤치는 8부작 다큐멘터리인데, 어찌나 면밀한지 피자를 이야기하려 미국과 이탈리아 각지부터 도쿄의 ‘스시 피자’까지 살필 정도다. 에피소드의 백미는 그가 뉴욕 최고의 피제리아라 회자되는 루칼리에서 도미노 피자를 주문하는 대목이었다. 루칼리의 셰프와 푸드 칼럼니스트는 농반진반으로 한 조각씩 맛보고, 이내 ‘생각만큼 나쁘진 않다’며 의견을 교환했다. 매회 그런 식이다. 셰프의 언어와 미식가의 언어, 칼럼니스트의 언어가 뒤섞이는데, 어쨌거나 그들 모두가 경청하고, 시도하고, 이야기한다. 늘 뭔가를 먹으면서 말이다.
책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 일지’가 선사하는 것은 또 다른 축의 즐거움이다. 시노다 나오키는 꼬박 28년 동안 매일 자신이 먹은 음식을 ‘그림일기’로 기록하고 있는 기인인데, 수준을 가늠하지도, 비결을 연구하지도 않는다. 오직 그날 “눈과 혀로 만끽한 음식에 감사를 표할” 뿐이다. 방송인 백종원의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TV 프로그램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홀로 이국 거리를 전전하며 온갖 상식을 늘어놓는데, 가장 큰 특징은 그 사이사이 “아, 여따가 밥 말아먹고 싶네” 같은 추임새를 섞는다는 점이다. 앞서 열거한 두 이야기 방식이 적절히 버무려졌달까. 보고 있자면, 역시 먹는 이야기는 발화자의 매력을 무시할 수 없는 분야지 싶어진다.
식도락 이야기를 속되게 여기는 태도에도 일리는 있다. 음식만큼 다양한 층위의 이야깃거리를 가진 분야도 없을 것인데, 개중 어떤 갈래들은 먹보인 내게도 피로하기 때문이다. 과한 수사로 맛부터 형용코자 할 때, 오직 우열을 가리는 것을 과제로 삼을 때, 지식과 취향으로 자꾸만 본인이 우월하고자 할 때. 하지만 그런 경솔함의 문제가 식도락 자체를 저속한 분야로 만들 수는 없다. 음식은 그 자체로 문화인류학이고 과학이며 미학이다. 그리고 그 다채로움으로 인해, 먹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자기도 몰래 자꾸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게 된다. 엄숙하기엔 너무 아까운 묘미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