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 보류
한 재계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 지분 절반가량이 외국인 주주인 상황에서 한국식 기업 개혁의 특수성이 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정부가 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완화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엘리엇 압박, 국민연금 트라우마 결정타
단기 수익을 노린 엘리엇의 억지 공격으로 본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달 15일 세계 2위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에 이어 같은 날 세계 최대 자문사인 ISS까지 반대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해외 기관투자가는 의결권 자문사 의견에 따르는 경향이 높은데,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주주 지분은 약 48.6%다. 17일 2대 주주로 지배구조 개편안 통과의 열쇠를 쥔 국민연금(9.8% 보유)의 의결권 자문에 응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까지 반대에 나선 것은 결정타였다.
재계 관계자는 “2015년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 권고에도 국민연금이 찬성한 뒤 법적 논란에 휩싸였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례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주총 통과가 어렵고, 국민연금이 찬성해도 추후 법적, 정치적 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시장의 반대에 맞서 무리하게 개편안을 추진할 필요는 없다는 최고위 경영진의 유연한 판단이 주총 취소로 이어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시장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 재벌개혁 주도하던 공정위 체면 구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후 줄곧 재벌의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해 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8월 외신 인터뷰에서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구조 해소에 대해 현대차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은 실제로 정부와의 교감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은 3월 현대차그룹 개편안 발표 이후 “시장의 요구에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긍정적인 의견을 밝힌 것이다.
이번 현대차그룹 개편안 보류로 정부가 추진하던 대기업 구조개혁이 후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 위원장은 최근 10대 그룹 경영자와 만나 “재계가 지배구조와 거래 관행 개선 사례를 발표하고 추진해 온 것은 정부 정책에도 부합하지만 무엇보다 시장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무산으로 인해 시장이 ‘공정위 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에 이어 삼성그룹에 대한 지주사 전환 요구가 여전히 있는 만큼, 이를 위해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제도 변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 정의선 “주주, 시장과 소통하며 재추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이날 지배구조 개편안 중단 결정에 대해 “여러 주주분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했다. 시장 신뢰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자동차 사업 본연의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고 주주 환원으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 / 세종=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