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자신의 아호(雅號)를 딴 곤지암의 ‘화담숲’ 이야기가 나오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이렇게 말하곤 했다. 황진이의 유혹을 뿌리친 서경덕처럼 행동할 자신은 없다는 유머였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이런 소탈한 면모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까지 쉽게 매료됐다.
▷구 회장은 소탈하고 유머를 즐기면서도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도 절대 결례하는 법이 없었다. 유명 중식 셰프 유방녕 씨는 ‘매너가 좋고 존경할 만한 손님’으로 구 회장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흔히 골프장에서는 플레이어들끼리 소액의 내기를 하기도 하지만 LG그룹의 곤지암 골프장에서는 ‘현금이 오가는 내기 골프’는 금지한다. 구 회장은 “골프장에서 현금을 주고받는 것은 졸부들이나 하는 짓 같아 보기 나쁘다”며 정색을 했다.
▷구 회장의 장례는 “나 때문에 번거로운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조용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일부 재벌가 총수, 자제들이 빗나간 행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 와중이어서 예의 바르고 소탈했던,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재벌 3세’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을 깨뜨린 구 회장의 퇴장이 더더욱 아쉽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