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부터 달러 순매수액 공개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하면 해외에서 달러화로 표시된 한국 제품의 가격이 싸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보유 외환을 동원해 환율을 조정했다고 미국은 의심해왔다.
○ 더 미룰 수 없었던 시장공개
하지만 미국은 한국 정부가 원화 가치를 어떤 수준까지 만들어야겠다는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보유 외환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이렇게 미국의 요구가 거세진 데다 올 상반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합류하려면 외환시장을 공개해야 한다는 가입 요건도 충족해야 했다.
실제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번 공개 방침을 정하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공동선언문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공동선언문은 각국 외환당국의 시장 안정 조치를 매 분기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조치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투명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 투기세력 공격에 대비해야
외환시장 개입 내용 공개 주기가 길고 순매수 내용만 공개하기로 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김두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정부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6원 오른 달러당 1081.2원으로 마감해 정부의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 방안 발표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용 공개 수준이 미국의 요구보다 낮은 만큼 추가 공개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잘한 건 순매수액만 공개하기로 한 부분인데, 바꿔 말하면 미국 등에서 1, 2년 후에 총매수 및 총매도 금액과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외환시장에 위기가 닥쳤을 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패턴이 공개되는 만큼 글로벌 투기세력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한 정교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은 “외환시장 위기 가능성을 확실히 제거할 수 있도록 미국에 한미 통화스와프를 논의하자고 제안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이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