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논설위원
우선 규제개혁위원회다. 지난주 보편요금제가 규개위를 통과했다. 민간기업인 SK텔레콤에 특정 상품을 강제로 만들게 하고 품질과 가격은 정부가 정하겠다는 제도다. 규제 중에서도 최저급인 가격 통제다. 대통령 공약 이행 차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적어도 규개위에서는 제동을 걸든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든지 해야 정상이다.
위원회 구성이 문제였다. 전체 위원 24명 가운데 민간위원이 16명, 국무총리를 포함해 정부위원이 8명이다. 대부분이 교수인 민간위원도 총리실, 청와대가 정한다. 정부가 원하면 어떤 규제든 통과시킬 수 있는 구조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격이다. 이 위원회가 규제개혁이란 이름에 걸맞은 기능을 하려면 전원 혹은 절대 다수를 민간위원으로 바꾸어야 한다. 규제를 신설하고 유지하는 데 절차적 정당성만 부여할 바에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듯싶다.
광고 로드중
현 정부 업무지시 1호로 탄생한 일자리위원회는 간판형에 속한다. 위원장은 대통령이지만 실제로는 부위원장이 운영한다. 국세청장 출신 이용섭 초대 부위원장은 취임한 지 1년도 안 돼 광주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사퇴했다. 후임 이목희 부위원장은 청춘을 노동운동에 바친 정치인 출신이다. 일자리 만들기보다 지키기를 더 잘할 것 같은 경력이다. 일선 부처에서는 시어머니 노릇만 안 해도 다행이라는 표정들이다. 이름이 거창한 대통령직속 위원회들이 대부분 비슷한 사정이다.
부처 산하 위원회와는 위치가 다르긴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왜 위원회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행정기관이다. 위원회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양한 의견과 토론을 합의로 결정하자는 취지에서 생긴 시스템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대기업에 대해 누구보다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최근 10대 그룹 경영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에 작성한 보고서에 모든 이슈가 다 나와 있다”며 “삼성 측에도 전달했다”고 했다. 공정위 상임·비상임위원 9명 중 6명이 공정위 간부 출신이다. 나머지가 정부연구기관,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 1명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위원회’가 아니면 더 이상하다.
너무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너무 황당하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 그런 위원회 가운데 최근 화제가 된 몇 개만 예로 들었다. 실제로는 구성에서 운영까지 이보다 훨씬 황당한 거수기형, 면피형, 구색형 위원회가 수두룩하다. 제대로 운영하든지 아니면 일제 정리해야 위원회 공화국이란 놀림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