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환자중심병원] <4> 좋은문화병원
비 소식이 있던 11일 아침. 부산행 KTX열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우리동네 환자중심병원이 부산에 있는 병원으로 최종 결정됐기 때문이다.(이처럼 환자중심병원 시리즈는 국내 어디든 병원이 결정되면 바로 기자가 달려간다.) 3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부산역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부산역에서 취재장소까지는 택시로 20분 정도 더 걸렸다.
부산 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좋은문화병원. 부산에서는 이미 알 사람은 다 안다는 소문난 산부인과병원이다. 병원에 도착하니 부산 지하철 범일역이 바로 앞에 있었다.
임신과 출산은 경이롭고 행복한 경험이다. 하지만 첫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분만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는 게 사실이다. 아기를 건강하게 낳을 수 있을지, 분만의 고통은 어떨지에 대한 염려가 출산에 대한 공포심마저 들게 한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임신부 10명 중 7명은 ‘출산 전 공포나 두려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의학적으로는 이를 ‘분만 공포증(Tocofobia)’이라고 한다. 임신부는 급기야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심한 분만 스트레스로 자연분만 대신 제왕절개나 무통분만을 선택하기도 한다. 분만 스트레스가 1개월 이상 이어지면 임신부의 불안한 정서 상태가 태아에게도 전달돼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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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지원센터 ‘LTC클럽’ 운영 맞춤관리
좋은문화병원은 출산을 준비하는 부모의 초진부터 분만까지 스케줄을 관리하는 LTC(love to come·임산부지원센터)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을 방문해 임신이 확인되면 LTC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LTC클럽에서 출산 플래너를 지정 받은 예비 부모는 일대일 멘토링 서비스를 통해 산전관리와 출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플래너의 단계별 체크와 상담·관리를 받는다.
병원 구석구석을 돌다 2층 복도 끝에 자리한 LTC클럽 간판을 발견했다. 기자가 클럽 안으로 들어서니 플래너 몇 명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포토존과 정돈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LTC클럽은 임신을 확정 받은 예비 부모들이 병원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라더니 엄마, 아빠의 설렘을 반영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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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문화병원은 예비 부모를 위한 LTC클럽의 1 대 1전담 플래너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LTC클럽의 플래너는 예비 부모들의 출산 스케줄을 챙기고 상담, 관리를 맡는다.
예비 부모는 자신들의 전담 플래너에게 다양한 임신, 출산, 육아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플래너는 임신 주수에 따라 예비 부모에게 필요한 정보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임신 16주는 안정기로 병원을 방문해 부부교실, 입덧 등에 대한 건강정보를 제공받고 LTC클럽에서 무료로 제작해주는 아기탄생앨범을 받게 된다. 운동, 요가수업, 만들기 수업 등 다양한 강좌도 열린다. 22∼24주에는 임신성 당뇨검사와 분만에 대한 자세한 상담을 받는다. 27주가 되면 자연분만, 무통분만, 제왕절개 등 자신에게 맞는 분만법을 확정한다. 32∼35주에는 출산을 위한 준비사항들을 체크하고 본격적인 분만 준비를 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전담 플래너가 임신부의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며 이뤄진다.
예비 부모는 임산부 문화센터인 예교원(신경과학예술교육원)의 태교, 출산교실에도 참여할 수 있다. 예교원은 좋은문화병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부모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는 공간이다. 예교원의 모든 프로그램은 ‘행복한 출산’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부모들은 예교원에서 운영하는 임신부와 태아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음악 공연과 참여 프로그램, 플라워 수업, 오가닉 아기용품 만들기 수업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예비 엄마들이 예교원에 함께 모여 월남쌈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예교원의 장동렬 대표는 “예비 부모들에게 분만이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 아니라 한 생명이 탄생하는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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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 검사실 밖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아빠가 태아를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다. 좋은문화병원 제공
자연주의 분만센터. 좋은문화병원 제공
좋은문화병원은 젠틀버스 분만법으로 출산을 돕는 자연주의 분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30년 경력의 이경미 조산사는 “좋은문화병원에서 태어나는 신생아는 한달 평균 120명 정도로 그중 30여 명은 자연분만으로 태어난다고 한다”고 말했다. 자연주의 분만센터에서 출산을 한 배모 씨는 “첫째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다”며 “둘째는 자연분만을 원했는데 VBAC(브이백·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상황일 경우 자궁 출혈과 파열의 위험이 높다고 들어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배 씨는 자연주의 분만센터에서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둘째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신생아실. 좋은문화병원 제공
환자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병원
문 병원장은 산부인과 전문의로 올해 70세가 됐지만 아직도 병원 내에서 환자를 가장 많이 보는 현직 의사다. 지역사회봉사와 학회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문 병원장은 후배 의사들에게 “아프지 않은데 아프다고 하는 환자는 없다”며 “의사는 항상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최선의 진료와 치료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좋은문화병원은 1978년 개원했다. 긴 역사를 가진 만큼 감동적인 경험도 적지 않다. 문 원장이 문화병원으로 산부인과를 운영할 때 일이다. 한 엄마가 문 원장을 찾아왔다. 그는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둘째를 원했지만 12년 가까이 임신을 못한 불임환자다. 진단결과 양쪽 나팔관폐쇄증. 진단을 받고 병원을 다니며 IVF(체외수정)를 시도한 결과 문화병원에서 1992년 경남 실험관 1호 쌍둥이가 태어나게 됐다. 그런데 26년 뒤 문화병원에서 태어난 쌍둥이 중 한 아이는 좋은문화병원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좋은문화병원은 특히 직원들의 병원에 대한 자부심과 자발적인 좋은 병원 만들기 활동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TF팀을 구성해 운영하는 위원회 활동도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 ‘친절, 청결, 절약’을 목표로 내·외부적으로 환자 만족을 위한 세부사항들을 위원회 구성원들이 직접 만들고 실천한다. 위원회 활동은 경영진의 간섭 없이 30년 넘게 운영되며 좋은문화병원의 병원문화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절약을 목표로 ‘환자대기 시간 줄이기’와 ‘그린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일회용 컵 줄이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구자성 기획실장은 “좋은문화병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칙을 지키는 병원이라는 것에 직원들의 자부심이 크다”며 “무엇보다 환자 중심의 좋은 아이디어들은 환자와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고 있는 의료진, 직원들에게서 대부분 나온다”고 말했다.
간호사 이직이 심한 요즘 좋은문화병원에는 20년, 30년 된 장기근속자들이 많았다. 좋은문화병원의 작년 한 해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1.3%에 불과했다. 구 기획실장은 “병원 직원들의 근로환경은 환자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의료진의 서비스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좋은문화병원 직원 모두가 좋은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선정위원 한마디, “출산의 두려움 느끼는 예비 부모와 소통 중시”
좋은문화병원은 전반적으로 산모와 아이, 부인과 치료가 필요한 여성들에게 세심한 서비스와 최신 시설을 제공하며 최선의 진료를 위해 노력하는 병원이라는 평을 받았다.
김상일 병원협회 총무이사는 “좋은문화병원은 의사들이 배우는 병원”이라며 “환자편의를 최우선으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며 다부지게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본보 의학전문기자도 “저출산, 핵가족 현상으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산모들이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좋은문화병원은 출산 경험이 없는 임신부들에게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분만에 대한 걱정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좋은문화병원은 환자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시도에도 적극적이라는 평이다. 이재윤 대한치과의사협회 대변인은 “좋은문화병원은 환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병원”이라며 “의사가 직접 동영상을 촬영해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것에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구홍모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본부장은 “좋은문화병원은 의료기관 인증을 유지하고 환자안전법에 따른 환자안전 전담인력 배치와 환자안전위원회 설치를 해 운영하고 있는 모범병원”이라며 “기피 의료행위가 돼가고 있는 분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또 구 환자안전본부장은 “임신과 출산, 육아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정보 공유와 상담은 간단해 보이지만 병원 경영측면에서 수가반영이 되지 않아 손해 보는 일”이라며 “이런 환자 서비스를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은 환자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평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