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 수영장에서 만난 태국 가수 품 비푸릿. “방콕 차뚜착 시장에서 샀다”는 이 구제 옷을 입고 품은 이날 첫 서울 무대에 올랐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연장을 가득 메운 함성과 비명에 한국어와 태국어가 뒤섞였다. 무대 위 가수를 애타게 부르는 10∼30대 여성 팬들의 외침, 공연 전부터 길게 늘어선 관객 대기 줄…. 아이돌 팬덤과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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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cm의 큰 키. 호리호리한 몸. 해사한 미소에 조막만 한 얼굴. 품은 치아 교정기를 낀 이를 훤히 드러냈다. 파타야 해변에 부는 바람처럼 웃었다.
“2PM, 블랙핑크, 갓세븐에 태국인 멤버가 있다는 것은 알죠. 소녀시대의 ‘Gee’에 푹 빠진 적도 있고요. 요즘은 ‘혁오’ 같은 한국의 밴드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아요.”
품은 최근 ‘Lover Boy’ ‘Long Gone’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로 떠올랐다. 살랑대는 기타 연주에 세련된 선율과 화성을 실어 밀크티처럼 먹먹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멀리 몽골, 사우디아라비아, 케이맨제도, 페루에서도 응원 메시지가 와요. 요즘 꼭 달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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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품은 ‘태국 사람이니 태국을 알아야 한다’는 부모의 뜻에 따라 귀국했다. “방콕에 돌아와 또 한 번 다른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과 자취 생활이 힘들었지만 그 외로움이 제 음악을 만든 것 같아요. 부모님 세대의 가수 벗 통차이 씨도 좋아합니다.”
품의 지난해 데뷔 앨범 제목은 ‘Manchild’(애어른)다. “아이와 어른의 사이에 있는 사람이 만든 앨범이라는 의미예요. ‘Adore’ ‘Long Gone’은 18세 때 뉴질랜드에서 쓰기 시작해 방콕에 와 완성한 노래거든요.”
얼마 전 졸업한 대학에서 품은 영화 제작을 전공했다. 앞으로 단편영화와 광고 연출도 할 계획이다. 자신의 뮤직비디오도 스스로 연출했다. “파타야 해변과 방콕의 대학 캠퍼스에서 저예산으로 찍은 건데,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어요. 그 덕에 제가 한국에도 다 와보네요.”
품의 가사는 주로 사랑과 탈출을 갈망한다. ‘Run’은 영화 ‘문라이즈 킹덤’을 보고 쓴 곡. “뉴질랜드에서 자유롭게 자라 처음엔 방콕이 답답했나 봐요. 하지만 방콕의 정경은 이제 제게 늘 영감이 돼요. 경적 소리와 야단법석이 끓어 넘치는 낮이 지나가면, 밤과 새벽의 방콕은 위로를 건네죠. 저는 저의 도시가 정말 좋아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