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논설위원
이후 진행된 협상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산은은 당초 5000억 원을 넣기로 했다가 3000억 원을 늘려 8000억 원을 신규 출자하기로 했다. GM 본사는 36억 달러(약 3조86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넣기로 했는데 8억 달러가 출자다. 나머지 28억 달러는 이자를 받아가는 대출이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산은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된다. GM의 대출은 채권으로 남는다. 산은이 당초에 세운 ‘같은 대출, 같은 투자조건’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산은이 GM에 일방적으로 몰린 협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비판에 대한 반박이 이 회장의 ‘가성비론’이다. 8000억 원을 더 투입해 한국GM 공장 1만5000명을 포함한 협력업체 등 15만 명 이상의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10년간 지켜낼 ‘철수 비토권’을 확보했다면 투입가격 대비 높은 성과라는 주장이다. 2015년 이후에만 7조 원이나 신규 자금을 투입하고도 회생이 불투명한 대우조선해양과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이번 협상은 말하자면 100대 맞을 것을 50대 맞게 된 걸 가지고 안도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협상이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면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국가 간이든, 개인 간이든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상황이 언제나 불평등 조약, 불공정 계약을 만들어왔다.
GM이 언젠가는 한국에서 철수하리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견해다. 10년 내에 적어도 한 번은 심각하게 철수설이 제기될 것으로 본다. 이 기간에 2번의 대선과 그만큼의 총선과 지방선거가 있다. 비토권이 사라지는 10년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GM 본사 전략, 미래 자동차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과 구세대 자동차의 조립공장에 불과한 한국GM 공장의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고임금 저생산성 구조가 수년 새 크게 변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제2의 최후통첩에 대비한 전략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GM 협상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각오부터 다져야 할 것 같다. 언제까지 바짓가랑이 붙잡기 위해 수천억 원씩 국민 세금을 쏟아부을 건가.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