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3월 18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실에서 공동의장인 김대중(가운데),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자리를 함께한 김상현 당시 부의장. 동아일보DB
후농(後農) 김상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사진)이 18일 오후 6시 2분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지난해 8월 폐암 판정을 받았다. 민주화 운동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재활에 전념할 수 없었던 고인은 입원한 뒤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 장례는 민주화추진협의회 민주 사회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1935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16세 때 조실부모했다. 극심한 가난 속에 야간 고교 3학년을 중퇴했다. 그는 “그림 속의 과일도 꺼낼 먹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독했지만 학문을 동경했고, 친화력과 포용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또 다른 정치권의 마당발인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발랄한 생명력과 대의를 위한 열정. 고생스러운 가운데 그렇게 유머러스할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후농이 야당 정치인으로 겪은 시련과 성취는 그 자체가 현대사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이 통과되자 울부짖으며 투표함을 내던졌다. 유신 때 말소된 고인의 공민권(公民權)은 17년 만인 1988년 회복됐다. 신군부 쿠데타 때는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정대철 민주평화당 고문은 “대단히 적극적이고 개척정신이 높으신 분이었다”며 애도했다.
생전 고인은 호 ‘후농’에 대해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수감 중일 때 고은 시인이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고생했으니 생의 후반부는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DJ의 ‘후광’을 따라 지었다는 말도 있다. 또 다른 호는 무경(無境). 경계가 없다는 뜻이다. 막내아들인 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생전 아버지는 ‘무경’이라는 호를 더 좋아하셨다”고 했다.
고인과 오랫동안 교류한 동교동계 ‘특무상사’로 통하는 이훈평 전 의원은 “후농이 하늘나라에서 후광에게 ‘형님, 저도 왔습니다’라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고인은 부인 정희원 여사와 슬하에 3남(윤호, 준호, 영호) 1녀(현주)를 뒀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02-2227-7500), 발인은 22일, 장지는 경기 파주시 나자렛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