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곳곳 딸기의 향기
허수경 시인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의 2부는 과일들로 이뤄졌다. ‘레몬’ ‘포도’ ‘수박’ ‘자두’ 등의 과일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시편들이 실렸다. 그중 ‘딸기’의 한 부분은 이렇다. ‘당신이 나에게로 왔을 때/시고도 달콤한 딸기의 계절/바람이 지나가다 붉은 그늘에 앉아 잠시 쉬던 시절/손 좀 내밀어/저 좀 받아주세요/푸른 잎 사이에서 땅으로 기어가며 익던 열매 같은/시간처럼 받아주세요’
시를 비롯해 문화 속엔 딸기 이야기가 풍성하다. 은희경 씨의 소설집 ‘상속’에 실린 단편 ‘딸기도둑’은 부당하게 딸기 도둑으로 몰렸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성인이 돼서도 옭아 매인 여성의 이야기다. 내용은 어둡지만 딸기에 관한 묘사는 싱그럽고 섬세하다. ‘톱니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세 쪽짜리 초록 잎사귀 뒤에 숨어서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딸기는 정말 예뻤습니다. 더러 흙이 묻은 것도 있었지만요. 통통하고 붉은 딸기의 살을 처음 이로 콱 깨물었을 때의 그 한없이 부드럽고 탱탱한 과육의 감촉, 달고도 시고도 어느 틈에 녹아 없어져 버리는 황홀한 맛, 꿀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한 진하디 진한 향기….’
인천 강화군에서 채록된 설화 속 효자는 겨울딸기를 구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한겨울 중병에 든 어머니가 딸기를 먹고 싶어해서다. 뒷동산 딸기밭에 가서 칠일 기도를 했더니 산신령이 감동해 딸기가 열리도록 해줬다. 현대의 산신령은 ‘하우스재배’로 변신한 셈이다. 서양의 신화에도 딸기가 등장한다. 북유럽의 주신(主神) 오딘의 아내인 여신 프리그가 맡은 임무 속에서다. 프리그는 가엾게 죽은 아이들을 천국으로 이끌어야 했는데, 이때 아이들의 영혼의 관으로 사용된 것이 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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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