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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길러 먹는 재미, 이렇게 클 줄 몰랐죠”

입력 | 2018-03-23 03:00:00

[도심이 키우는 ‘도시농부’]<2> 내 손으로 키운 게 더 맛있다




서울 광진구에서 고깃집을 하는 신태영 씨가 지난해 서울시에서 분양받은 16.5㎡짜리 텃밭에서 상추를 따고 있다. 신 씨 부부는 7년째 텃밭에서 기른 상추를 비롯한 채소를 손님상에 올리고 있다. 신태영 씨 제공

20일 오전 5시 서울 광진구에서 고깃집을 하는 신태영 씨(61)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내 김용희 씨(63)가 차 트렁크에 호미와 장화 두 켤레, 새빨간 광주리 서너 개를 실었다. 부부가 탄 차는 식당이 있는 구의동이 아닌 경기 양평으로 향했다. 차로 4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지난달 서울시에서 분양 받은 16.5m²짜리 텃밭이다.

신 씨 부부 고깃집은 한자리에서 20년이 넘었다. 인기 메뉴는 돼지갈비. 상추 고추에 케일 치커리 같은 채소를 한가득 내놓는다. 4월부터 10월까지 이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다.

이 부부가 손님상에 직접 키운 채소를 올리게 된 계기는 7년 전 어느 날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이 상추, 배추를 먹어보라고 가져왔다. 식당에서 쓰던 채소 맛에 길들여져 있던 부부에게 그 맛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로 서울시에 텃밭 분양신청을 했다.

“노지(露地)에서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자라서 그런지 정말 맛이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7년째 텃밭을 가꿉니다.”

텃밭이 가져온 변화는 컸다. ‘상추 맛 좋다’며 찾아오는 손님들이 생겨났다. 채솟값이 폭등해 주변 식당들은 별도로 1000원씩 더 받을 때도 이 부부는 끄떡없었다. 사흘에 한 번 텃밭에 갈 때마다 상추 등을 20kg씩 따와 ‘상추 인심’은 늘 후했다. 5일간 장사할 양이었다.

신 씨는 “도매로 채소를 받을 때는 이렇게 넉넉히 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텃밭을 갖게 된 뒤로는 남은 채소를 단골들에게 싸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채소를 이용해 갖가지 반찬도 새로 만들어 내놨다. 그래도 평소보다 월평균 약 80만 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초보농부였지만 농법을 알려주는 책을 찾아 읽으며 어엿한 ‘도시농부’가 다 됐다. 상추, 쑥갓 등 한두 종류만 심다가 자신감이 붙으면서 케일, 비트를 비롯해 열두 가지 작물을 기른다. 허리가 좋지 않은 자신을 대신해 잡초 뽑고 물 주며 텃밭에서 일하는 남편 사진을 아내는 휴대전화로 자주 찍는다. 고마워서다. 부부는 “정성껏 가꾼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맛보고 손님들이 흐뭇해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택 옥상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손쉽게 작물을 기르는 상자텃밭.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서울시는 이 부부처럼 직접 유기농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도록 경기 양평 광주 고양 일대에 11만3850m² 규모의 친환경 농장을 분양하고 있다. 6900명이 쓸 수 있다. 매년 2월부터 두 달간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분양 신청을 받는다. 이용료 3만 원을 내면 16.5m²짜리 텃밭이 생긴다. 시는 유기질 비료, 천연 방제제 등 유기농법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한다.

친환경농장뿐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상자텃밭을 만드는 추세도 생겨나고 있다. 상자텃밭은 아파트 베란다나 단독주택 옥상 등에 만들 수 있어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 인기다.

강동구는 지난해 가로 50cm, 세로 120cm 상자텃밭 세트를 관내 446가구에 제공했다. 지난달 아파트 옥상에 놓을 상자텃밭을 신청한 손선혜 씨(35·여·강동구 둔촌동)는 토마토 모종을 심을 계획이다. 일곱 살 난 딸이 텃밭에서 자란 채소로 요리한 음식은 잘 먹어서다.

구 관계자는 “올해 상자텃밭을 신청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30, 40대 부부였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가꾸고 수확해 먹는 재미가 쏠쏠한 것 같다. 한 가구당 5세트까지 받아갈 수 있는데 더 달라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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