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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퇴근 순찰 이후… 칼퇴 눈치보기 사라졌다

입력 | 2018-03-22 03:00:00

[2020 행복원정대:워라밸을 찾아서]2부 일하는 방식이 확 달라진다
<7> 리더가 만드는 워라밸





2016년 신세계그룹 이마트 인사팀은 머리를 싸맸다. 회사 전체로 업무 시간은 긴데 생산성은 떨어지고, 조직은 정체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해법을 마련해야 했다.

크게 두 가지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일하는 시스템과 문화다. 올 초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기 전까지 2년 동안 시스템과 문화를 함께 바꾸기 위해 애썼다. 특히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배광수 이마트 인사팀장은 “PC오프, 집중근무시간제, 회의 시간 제한 등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의 성공을 위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임원 평가였다. 부서별 야근자를 조사하고, 야근자가 많으면 상위점수는 못 받는 식으로 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임원들이 야근 없이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이는 결국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요즘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요구,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 다양한 제도를 실험 중이다. 하지만 제도가 처음 도입되면 직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설마, 진짜로 저걸 해도 될까?”

자율근무제를 도입한 기업 관계자는 “어제 12시간 일하고 오늘은 3시간만 일하기로 했어도 다들 눈치를 보며 또 오래 앉아 있다. 이들에게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확실하며 중간관리자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 리더의 의지가 중요하다

2016년 어느 수요일 오후 5시 30분. 모 대기업 직원들이 술렁였다. 사장이 사무실 순찰을 돈다는 극비 정보가 돌았기 때문이다. 사장은 왜 한창 일할 시간에 사무실을 급습한 걸까?

이 기업은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을 도입하면서 오후 5시 30분에 무조건 퇴근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다들 눈치를 봤다. ‘휴가 가란다고 진짜 가고, 할 말 하란다고 진짜 했다간 집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주저주저하자 사장은 뛰어다니며 사무실에 남아있는 직원들을 회사 밖으로 쫓아냈다. 그래도 야근하는 사람이 두 번 이상 걸리면 해당 팀장의 결재권을 박탈해버렸다.

사장은 퇴근 후 집에서 근무하는 사태를 막으려 사내망 접속 상황을 전수 조사하는 꼼꼼함도 보였다. 몇 달이 지나자 사장이 ‘뜨지’ 않아도 알아서 집에 가는 게 문화가 됐다. 한 과장은 “학교도 아니고 사장이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퇴근시키는 게 처음에는 웃기기도 했는데 그래야 팀장이 바뀌고 직원들도 바뀌고 문화가 되더라”라고 전했다.

티 카페 오가다의 최승윤 대표는 책상 앞에 종이 있다. 종의 용도는 퇴근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최 대표는 종을 시끄럽게 마구 치며 퇴근을 독려한다. 최 대표는 월요일 오후 출근 제도도 도입했다. 이른바 ‘월요병’이라고 불리는 업무 비효율을 막으려고 월요일은 아예 오후에 출근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최 대표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제도”라고 말했다.

관리자의 ‘센스 있는 한마디’도 워라밸 정착에 도움이 된다. 육아 문제로 아침 늦게 출근하고 있는 김하나 씨(32·운송회사 대리)는 “팀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조금 일찍 출근했더니 부장이 ‘왜 일찍 왔냐. 밥 못 먹었을 테니 뭐라도 먹고 오라’고 해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눈치 보지 말고 당당히 퇴근해’, ‘일이 바빠도 집안일 먼저 챙겨라’는 말이 리더에게서 듣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 정착 때까지 강제 조치도 필요

한 외국계 자동차회사 인사팀은 대표에게 ‘금요일 오후 1시 퇴근제’를 제안했다. 계열 회사에서 이 제도를 시행했더니 반응이 좋다고 보고했다. 해외 본사 출신인 대표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우리 자율 근무제인데 다들 원했다면 왜 그동안 퇴근을 안했나요?”

인사팀은 “한국 문화에서는 아무리 자율 근무제여도 오후 1시 퇴근은 눈치를 보게 된다. 아예 제도를 선포해 달라”고 했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문화적 배경 속에서 기업 문화를 바꾸려면 강제 조치나 반복 캠페인도 도움이 된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2014년 두산그룹은 ‘왜(WHY)’ 캠페인을 진행했다. ‘상사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시 묻자’는 소통 캠페인이다. 예를 들어 부장이 “절대 강요하는 것은 아닌데,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 술 마시자”라고 했을 때,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를 땐 “진짜 가도 되는 것인가”라고 다시 묻자는 취지다.

두산 경영진은 구체적이지 못한 업무 지시와 직장 상사의 말을 눈치껏 알아듣고 해석해야 하는 문화 때문에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하고 이 캠페인을 도입했다. 두산 관계자는 “3년 동안 줄기차게 캠페인 영상을 보고 들으니 이제 ‘다시 묻는 문화’가 정착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고순동 한국MS 대표 “확실한 목표 설정… 일하는 방식 노터치”▼


“한국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하다 보니 직원들이 ‘공장라인’에 앉아 있어야만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구성원이 어떻게 일하든 결과만 낸다면 용인해 주겠다는 생각을 경영진이 갖는 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출발점이다.”

고순동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대표(60·사진)는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구성원들이 유연하고 즐겁게 일하면 자연스럽게 회사의 생산성은 높아지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 대표는 미국 IBM 임원, 삼성SDS 대표를 거친 정보기술(IT) 업계 전문가다. 미국과 한국 기업을 오가며 여러 기업의 일하는 방식도 목격했다. 다른 직종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IT 업계에 있었지만 2016년 한국MS로 자리를 옮기고 놀란 일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회의 문화다.

고 대표는 “MS에 입사해 가장 놀랐던 점은 회의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하는 점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고 대표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쓸데없는 얘기를 하면 서로 자르고, 빠르게 결론을 내는 분위기가 정착되는 것을 보고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MS는 2004년 ‘일하는 방식’만 연구하는 ‘워크플레이스 리서치’ 조직을 만들었다. 최적의 업무 환경이 뭔지, 전문가들이 모여 연구보고서를 만든다. 각종 제도는 전 세계 지사에 도입한다.

한국MS는 자율 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재택근무는 당일 팀장에게 구두 보고하고 해도 된다. 어느 누구도 늦게 출근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을 ‘불성실하다’거나 ‘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대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의 문화’와 사무실에 앉아있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기술 인프라’, 쾌적하게 근무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와 직원이 서로 신뢰하기 위해서는 직무가 명확해야 한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확실한 목표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한국MS는 본사 인사팀에서 해당 직군에 대한 업무 할당량을 제시한다. 동시에 팀장과 팀원이 1년에 2번 이상 세부 목표와 실행 과정에 대해 의무적으로 미팅하도록 한 ‘커넥트 제도’를 두고 있다.

고 대표는 “성과 목표에 대해 팀장과 팀원이 합의를 본 뒤에는 구성원들의 일하는 방식(과정)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는 명확한 워크(일)를 주고 직원 스스로 밸런스(삶)를 맞추도록 하는 것이 워라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변종국 bjk@donga.com·김현수 기자·신무경 기자 y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