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나는 지지 않는다” 5전 6기, 두 팔로 달린 63km

입력 | 2018-03-19 03:00:00

[평창패럴림픽 폐막]패럴림픽 한국 첫 金 신의현




“그의 눈이 정말 여기까지(눈앞으로 손을 빼며) 튀어 나와 있었다.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첫 바퀴를 돌 때부터 다른 나라 코치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캐나다에서 온 한국대표팀 캐스퍼 위즈 코치는 신의현(38·창성건설)의 눈빛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신의현이 17일 2018 평창 겨울 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7.5km에 나섰을 때였다. 앞서 출전한 5개 종목에서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한 그는 “지고 싶지 않다”며 눈까지 부라리면서 레이스에 나섰다. 경기 후반부 한때 2위 대니얼 크노슨(38·미국)에게 2.6초 차까지 추격을 허용했지만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5.3초 차로 그토록 원하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쟁터에 나와서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했습니다. 주행 당시에 5초 차가 난다고 하기에 제가 5초를 뒤지고 있는 줄 알았어요. 따라 잡으려고 열심히 했습니다. 피니시 직전까지도 2위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전광판을 보니 태극기가 있더라고요.”

신의현은 거듭된 좌절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던 원동력을 묻자 “제가 한 말이 있잖아요. 애국가 들려드린다고 말을 뱉었는데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될까 봐 잠이 안 왔어요. 제가 신용은 정말 좋은 사람인데”라며 웃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천안시 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 크고 작은 단체들의 일을 돕던 행정 직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겨울 패럴림픽은 상상도 하기 힘든 무대였다.

그랬던 신의현의 운명이 바뀌게 된 건 우연하게 이어진 인연의 연속 때문이다. 2015년 창성건설 배동현 대표(현 평창 겨울패럴림픽 선수단장)는 장애인 노르딕스키연맹을 맡겠다며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 체육과장이었던 현 정진완 평창 패럴림픽 총감독을 찾아갔다. 정 총감독은 대뜸 자신을 찾아온 배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정 감독은 “장애인을 이용해 사업 좀 해보려는 양아치인 줄 알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뭐 열심히 해보시면 인정단체 정도는 해 드리겠다며 돌려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장애인노르딕스키에 배 대표가 애정을 쏟는 모습에 마음을 돌렸다. 선수 모집에 애를 먹자 정 감독은 충남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던 시절 봤던 신의현을 떠올렸다. 힘 하나는 장사였던 그에게 노르딕스키(북유럽에서 발달한 종목으로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등이 있음)가 제격일 것 같았다.

“노르딕스키를 권했더니 운동에만 전념하려면 먹고사는 게 문제라고 얘기를 하더라. ‘그럼 실업팀을 추진할 테니 해보겠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한번 해봐야지요’ 하더라. 그래서 바로 배 대표에게 전화를 해 ‘이런 선수가 있는데 실업팀 하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기왕 지원하실 거면 하나 해주시죠’ 했다. 배 대표는 ‘해야 돼요? 그럼 할게요!’라고 단번에 OK 했다.”

정 총감독에게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던 ‘힘’의 비결로 신의현은 농사일을 꼽았다. 신의현은 “집에서 밤 농사를 했는데 밤이 한 포대에 40kg씩 나간다. 창고에 많이 쌓을 때는 몇백 짝씩 쌓았는데 그러면서 허리 힘이 길러진 것 같다. 또 어머니가 칡즙 장사도 하셨는데 칡을 캐오면 kg당 500원씩 쳐주셨다. 친구들이랑 경운기 끌고 와서 3, 4시간씩 캐서 용돈을 많이 벌었다. 칡뿌리 캐느라 괭이질, 삽질 하면서 당기는 힘이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사고 후 인생의 낭떠러지에 떨어진 줄만 알았다던 신의현은 예전의 자신처럼 힘들어할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장애가 있으신 분들도, 사고로 병원에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 제가 선수 생활 하는 동안 최대한 열심히 하면 그분들도 좋은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일단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잖아요.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신의현은 4년 뒤 베이징 겨울패럴림픽은 물론이고 2년 뒤 도쿄 여름패럴림픽의 핸드사이클 도전도 선언했다. 평창에서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에 도전장을 냈던 ‘엄마 선수’ 이도연(46)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여름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그 종목이다. 신의현은 “사이클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나간 대회에서 도연 누나한테도 졌다. 그때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열심히 해서 외국 선수들을 이겨보고 싶다. 지금 생각해도 또 열 받는다. 그래서 도전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창=임보미 bom@donga.com·정윤철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