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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쓴맛을 봐야 쓴맛의 실체를 안다

입력 | 2018-03-06 03:00:00

<36> 소태나무




쓴맛을 상징하는 소태나무.

소태나뭇과의 갈잎중간키나무 소태나무는 나무의 껍질이 소의 태(胎)처럼 아주 쓴맛을 내서 붙인 이름이다. 음식의 간이 맞지 않아 매우 짜거나 쓴맛이 나면 흔히 ‘소태맛’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태나무는 쓴맛을 상징하는 나무다. 소태나무의 한자는 고수(苦樹), 고목(苦木) 혹은 황동수(黃棟樹) 등이다. 학명(Picrasma quassioides (D.Don) Benn.)의 속명과 종소명 모두 쓴맛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소태나무를 운향과 갈잎큰키나무의 황벽나무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고전 작품 중에 등장하는 황벽(黃蘗, 黃檗)의 한자를 소태나무로 오역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소태나무를 의미하는 고수는 ‘목민심서·형전(刑典)’에서 보듯이 물푸레나무를 의미할 때도 있다. 따라서 소태나무처럼 나무의 한자 이름은 상황에 따라 다른 나무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소태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서 ‘소태나무골’을 발견할 수 있다. 소태나무는 전통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줬다. 그 탓에 나이가 많은 소태나무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경북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 길안초등학교 길송분교 뒷마당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소태나무(천연기념물 제174호)가 살고 있다.

나는 이곳의 소태나무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얼마 전 다시 찾아보니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전의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거의 죽음 직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소태나무가 국가문화재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초등학교라는 공간과 신목(神木)이기 때문이다. 당집은 이곳 소태나무가 신목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다. 전국에는 이곳 소태나무처럼 다양한 종류의 신목이 있지만 신목 옆에 당집을 갖춘 사례는 많지 않다. 신목을 모시는 당집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그만큼 나무를 모시는 사람들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속담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쓴맛보다는 단맛을 원한다.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종종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충고하지만, 귀담아듣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 이러한 현상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인생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쓴맛을 보지 않고는 쓴맛의 실체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경험을 통한 반복학습은 인생의 앞날을 밝히는 등불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