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거물 추문과 분리대응 움직임… 극단들도 “문화 바꾸자” 자정 기류
“공연계 성폭력 OUT” 25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검은색 마스크를 쓴 시민 약 600명이 ‘공연계 성폭력 OUT’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성폭력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열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3일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은 서모 씨(41·여)가 말했다. 평소 연극을 즐겨 본다는 서 씨는 최근 ‘미투(#MeToo·나도 성폭력을 당했다)’가 연극계 전반으로 확산되자 충격을 받았다. 예매한 티켓을 취소할까도 생각했지만 소극장에서 꿈을 키우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연극을 보러 왔다.
이날 이 소극장 매표소 앞에는 관객 3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티켓 판매원 변모 씨(27·여)는 “이번 사태로 관객이 줄어들까 걱정됐는데 티켓 예매도 줄지 않았고 지난주보다 관객이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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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관객은 ‘연극 골라 보기’에 나서고 있다. 한 달에 보름 이상 연극을 본다는 대학생 정모 씨(25·여)는 성추문에 관계자가 연루된 극단의 연극은 모두 예매를 취소했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연극은 계속 보기로 했다. 정 씨는 “‘연극의 ‘사람 냄새’에 매료됐는데 사람 사이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니 계속 봐야 하나 고민이 컸다. 하지만 나쁜 부위를 도려낸다면 연극계가 새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3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는 시민 약 600명이 ‘공연계 성폭력 반대 집회’를 열었다.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니라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련한 자리다. 미국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여배우들이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것처럼 검은색 마스크를 쓴 참가자들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를 지지한다’ ‘공연예술인은 극장으로, 범죄자는 경찰로’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40년째 연극 팬이라는 여리 씨(63)는 “공연계가 더 이상 남성 우월의 시선으로 여성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극단도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 한 극단 스태프 A 씨는 “공연에서 애드리브를 할 때 ‘좀 더 발언에 신경 쓰고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서로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적인 애드리브를 할 때 여성 관객들이 언짢아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구특교 kootg@donga.com·유주은·권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