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풀어본 스켈레톤 최강자 윤성빈의 모든 것
16일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남자 스켈레톤 3차 레이스에서 폭발적인 스타트를 하고 있는 윤성빈. 평창=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3년 대림건설이 평창 슬라이딩센터를 설계할 당시 한국 썰매 종목 코치진은 초반 구간을 직선이 아니고 굽어지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건장한 체격의 유럽 선수들은 출발 기록이 월등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안방의 이점을 살리려는 의도였다. 실제 경기장은 스타팅 하우스(1번 코스)를 나오자마자 2번부터 급경사로 휘어지는 코스로 완성됐다.
하지만 정작 평창 올림픽이 열린 5년 뒤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굵은 허벅지를 자랑하는 윤성빈이 코스를 가리지 않는 새로운 최강자로 떠올랐다. 평창 올림픽의 총 4차례 주행 모두에서 4초7 이하의 출발 기록을 보인 건 윤성빈과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4위)밖에 없었다. 특히 윤성빈은 2차 레이스에서 평창의 스타트 레코드인 4초59를 기록했다. 둘레가 65cm에 이르는 윤성빈의 허벅지 파워는 출발부터 스피드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타고난 재능을 실력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윤성빈이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다. 외국 초행길을 헤쳐 가며 마트에서 음식을 사고 먹기를 반복했던 그 모습에서 수식어 ‘천재’ 속에 숨겨진 윤성빈의 악바리 근성을 엿볼 수 있다.
2017∼2018시즌 월드컵에서 4차례 우승하며 사상 최초로 세계랭킹 1위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던 1월, 윤성빈은 7차 월드컵 레이스(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우승한 뒤 남은 8차 레이스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남은 대회를 건너 뛴 대신 평창 트랙에서 막바지 실전 훈련에 몰입했다.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개장 이후 그는 이곳에서 총 380회의 주행 연습을 했다.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며 라인을 찾아갈 정도로 트랙을 익혔다. 윤성빈은 올림픽 경기 전 12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6번의 스켈레톤 공식 주행 연습에 두 차례만 참여했다. 13일 두 번의 연습 주행에서도 그는 베스트 주행 라인을 타지 않았다. 굳이 적수들에게 자신의 비기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공식 연습 주행 2번과 총 트랙 훈련 380번은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윤성빈의 강단과 치밀한 전략을 대변한다.
윤성빈은 강철 멘털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힘든 내색도 없고, 경기 전에 긴장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다는 징크스도 없다. 레이스를 펼치기 전 하나라도 어긋나면 경기력이 떨어지곤 하는 특별한 ‘루틴(습관)’도 없다. 올림픽 경기 직후 “압박감은 없었느냐”는 외신의 쏟아지는 질문에 “전혀!”라고 딱 잘라 말했던 윤성빈이다.
윤성빈은 평창 올림픽까지 나온 역대 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7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가 앞으로 세계 스켈레톤계를 휘어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총감독은 장담했다.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 윤성빈의 시대가 될 것이다.”
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