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순환 주기를 60년으로 잡아 역사의 시간을 셈하는 동아시아인에게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로 새로운 한 해를 호명하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건 신의 탄생을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로만 무한히 시간을 확장하는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 같은 연도 표기나 방사성탄소로 측정되는 현재 위주의 과학적 연도 표기인 B.P.(Before the Present)로는 표현할 길 없는 깊은 반복의 율려(律呂·동양적 음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간지의 세계에서 시간은 사람이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는 나이의 평균값인 60년을 되풀이하며 새롭게 시작된다. 언뜻 이탈리아 역사학자 잠바티스타 비코(G. Vico)가 주장한 나선사관, 즉 역사가 나선처럼 순환하며 발전한다는 관점과 유사하지만 결이 다르다. 비코는 비록 나선적일지언정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고 믿었다. 이와 달리 간지의 우주는 누적적이다. 지층 위에 또 다른 지층이 퇴적되고 이 무한한 퇴적은 그저 변화할 따름이다. 이 고고학적 질서 속에서 과거란 지양해야 할 미개함이 아니라, 거울처럼 끝없이 되비춰봐야 할 ‘아직 오지 않은 현재’이자 ‘미리 도래한 미래’인 셈이다.
올해는 무술년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얼마나 수많은 무술년이 있었겠는가. 그 하나하나에 고유한 의미와 소명이 있었을 테다. 그 의미나 소명들이 맺히고 실현되며 오늘의 무술년을 오게 했을 것이다. 이 반복의 리듬 가운데서 다음 60년을 설계하는 것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책무는 아닐까.
올해는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조선 세종의 즉위, 임진왜란의 종전고려 때엔 태조 치세기인 938년을 필두로 모두 여덟 번의 무술년이 있었다. 네 번째 무술년인 1118년을 기점으로 왕조의 운명이 갈린다. 예종 재위기인 이 무렵 고려 조정은 지나치게 문치 중심으로 기울며 미구에 닥칠 무신정변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왕들은 아름다운 문장과 미려한 시가 속에 융성한 문화의 힘을 아로새기려 했지만 건국 모토였던 진취적 기상과 상무정신을 차츰 잃어갔다. 그 결과 다음 무술년인 1178년 고려는 무신(武臣) 천하가 돼버린다(무신정변이 일어난 정확한 해는 1170년이다).
조선시대 무술년은 세종 즉위 해인 1418년(올해는 세종 즉위 600주년)을 필두로 총 아홉 차례 있었다. 세 번째 무술년인 1538년은 중종대로, 사화를 거치며 당파의 분열이 왕의 인척 세력을 중심으로 횡행하던 무렵이다. 이런 국론분열은 임진왜란이라는 참극으로 이어졌고 다음 무술년인 1598년이 돼서야 이 미증유의 동아시아 국제전은 종전을 맞는다. 바로 이해 9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숨을 거두면서다. 충무공 이순신도 그해 12월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총탄에 운명했다. ‘재조산하(再造山河)’를 기치로 내걸고 왕조 부흥을 노린 다음 왕들은 나라의 운명을 돌리는 수레바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데만 급급했다.
일곱 번째 무술년인 1778년은 정조 재위 2년으로 새 왕이 기존 오군영 체제를 혁파하고 장용영으로 대표되는 친위군을 양성하던 때다. 정조야말로 공민왕에 비견될 개혁군주의 자질을 갖췄지만 그 역시 포부를 펼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 다음 무술년인 1838년은 헌종 치세로 세도정치가 극에 달해 있었고 마지막 무술년인 1898년엔 흥선대원군이 사망했다.
공민왕과 정조, 그리고 ‘58년 개띠’고려와 조선시대 무술년으로 이야기의 뼈대를 맞춰보니 마치 우주 삼라만상이 겪는 흥망성쇠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허무한 부침의 와중에도 하나의 희망이 엿보이니, 운이 쇠하기 전 반드시 한 차례 기회가 더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고려시대 공민왕, 조선시대 정조가 이를 상징하고 있다. 두 사람의 개혁은 그 성질이 서로 다르지만, 당대 폐습을 혁파해 왕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려 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58년 개띠들이 올해 환갑을 맞는다. [동아일보]
무술년이라는 소재를 붙잡고 이야기의 여정을 따라 걷다 보니 필자에겐 형님 세대, 20대에겐 부모 세대에 대한 서사시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이들의 존재는 대한민국 현재 운명에 막중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애도와 존경, 감사와 아쉬움의 마음을 동시에 갖는 건 필자만은 아닐 테다.
올해엔 1958년 무술년을 경신하며 2018년의 새로운 무술년 세대가 태어날 것이다. 앞 세대는 환갑을 맞아 사회 일선에서 하나 둘 사라질 테고, 다음 세대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와 손잡던 88 서울올림픽을 20대에 목격한 필자는 58년생의 다음 세대로서 이 두 고리를 연결해야 할 필요를 깊이 절감한다.
윤채근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zoongsoo@hanmail.net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8년 11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