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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권력자 압박에 어쩔수없이 후원… 정경유착 사건 아니다”

입력 | 2018-02-06 03:00:00

[이재용 353일만에 집유 석방]항소심 집유석방 선고 이유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 재판의 핵심 쟁점은 뇌물죄 인정 여부였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에게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얻기 위한 부정한 청탁을 하고 최순실 씨(62·구속 기소)에게 승마 지원을 한 것 등을 뇌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10개월여의 1심과 항소심 내내 ‘부정한 청탁→승마·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경영권 승계’의 인과관계를 놓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이어졌다.

5일 선고를 한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그 첫 단계인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3차례 독대한 자리에서 명시적으로도 묵시적으로도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뇌물죄를 떠받치는 기초부터 무너진 것이다. 게다가 뇌물죄의 대가에 해당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없었다고 봤다.

○ “‘제3자 뇌물죄’ 전제인 부정 청탁 없어”

재판부는 삼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16억2800만 원의 후원과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204억 원의 출연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은 게 아니라서 ‘제3자 뇌물죄’가 적용돼야 하는데 그 전제가 되는 구체적인 부정 청탁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거나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승계 작업을 매개로 승마, 영재센터, 재단 지원을 한다는 묵시적 인식과 양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영재센터 후원을 뇌물로 본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형량을 대폭 낮춘 것이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 중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부분은 최 씨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뿐이다. 그나마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2)가 독일에서 탄 말 3필에 대한 소유권은 삼성에서 최 씨 모녀에게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삼성이 최 씨 측에 용역대금 명목으로 보낸 36억여 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여기에 구체적인 청탁이 필요 없는 ‘단순뇌물죄’를 적용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는 뇌물을 받기로 공모한 공동정범이고, 대통령의 광범위한 권한에 의해 삼성의 기업활동이 대통령 직무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직무 관련성 및 대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 “대통령이 겁박…정경유착 아니다”

재판부는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을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타인에게 나눠 준 박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한 최 씨’로 규정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경영진을 겁박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최고 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의 위세와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최 씨 모녀 지원과 영재센터 후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범행 방법을 보더라도 재벌 총수나 그 일가의 사익 추구를 위해 그룹 전체나 계열사의 회계를 조작해 조성한 비자금으로 뇌물을 공여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이 부회장 등이 뇌물을 공여한 대가로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떠한 이익이나 특혜를 요구했다거나 실제로 취득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권력과의 뒷거래를 배경으로 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 거액의 불법·부당대출,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 자금의 투입 등과 같은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모습을 이 사건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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