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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컬처]‘낙서를 예술의 경지로’…사상 최대 관객 찾은 바스키아 회고전

입력 | 2018-02-05 18:50:00

미국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 공간 \'머드 클럽(Mudd Club)\'에서 춤추고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 1979년.-바비칸 아트 갤러리 제공·ⓒNicholas Taylor·ⓒ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인디 영화 '다운타운 81'의 장면에 등장한 뉴욕 거리에 낙서(그래피티)를 하고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 -바비칸 아트 갤러리 제공·ⓒNew York Beat Film LLC·ⓒ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흑인 야구 영웅 ‘행크 아론’의 이름위에 왕관을 그려 넣은 헬멧을 쓰고 작품 앞에 서 있는 장-미셸 바스키아(1981). 그의 작품에서는 흑인 우상을 향한 존경심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바비칸 아트 갤러리 제공·ⓒ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장-미셸 바스키아의 ‘할리우드 아프리칸스’(1983). 휘트니 뮤지엄 소장. 자신의 얼굴과 동료 예술가 Toxic, Rammellzee를 그려 넣었다. 좌측의 사람 모양 형상은 흑인 최초로 오스카를 수상한 해티 맥다니엘을 의미한다.- 바비칸 아트 갤러리 제공·ⓒ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바스키아의 '무제(파블로 피카소)'(1983). 프라이빗 컬렉션, 이탈리아.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즐겨 입은 피카소의 모습과 그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적은 표현이 특징적이다.- 바비칸 아트 갤러리 제공·ⓒ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영국에서 최초로 열린 바스키아 회고전 '바스키아: 붐 포 리얼' 전시장 모습. 복층 구조의 갤러리 윗편에 적힌 글귀는 바스키아의 말이다. "나는 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른다. 그걸 물어보는 건 재즈 연주가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당신의 트럼펫이 어떻게 소리가 나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바비칸 아트 갤러리 제공·ⓒ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지난달 27일 오후 8시(현지 시간)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가 ‘더 시티(The City)’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러나 이곳에 자리한 ‘바비칸 아트 갤러리’ 인근은 젊은 예술가, 가족, 휠체어를 탄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으로 북적였다. 영국에서 처음 열린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회고전 ‘바스키아: 붐 포 리얼(Basquiat: Boom for Real)’을 보기 위한 행렬이었다. 티켓 부스에선 “현재는 매진이라 오후 10시부터 입장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시 마감 하루 전 날 갤러리는 자정까지 문을 열었다.

196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28세로 요절하기까지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이끈 예술가’ ‘블랙 피카소’란 상찬을 받았다. 약물 복용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지라 작품 수가 적은데다 대부분 개인수집가가 소장해 경매에서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 첫 회고전이 열리기까지 20여 년이나 걸린 이유다. 때문에 지난해 9월 시작한 전시는 바비칸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찾았다고 한다.

바스키아의 작품은 물론 노트에 적은 시, 길에서 팔았던 그림엽서와 작곡한 음악 등을 통해 ‘인간 바스키아’를 보여준 전시장은 갤러리를 넘어 ‘평생 학교’가 됐다. 아트 앤 디자인 BTEC(영국 공인 교과과정)을 밟고 있는 15~17세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하며 작품 분석을 적어 내려가는 풍경도 보였다. 바스키아의 생전 영상을 감상하던 로즈마리 밀러 씨(63·여)는 “런던의 장점은 문화적 기회를 평범한 사람도 손쉽게 누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그가 살아있었다면 더 좋은 작품을 보여줬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100여 점에 이르는 회화는 그가 왜 젊은 예술가의 뮤즈인지 무언으로 설명했다. 랩을 하듯 수차례 눌러 쓴 글씨와 동시대 힙합, 재즈 문화에서 차용한 시각 언어가 신선한 감각을 자극했다. 힙합 아티스트 제이 지(Jay-Z)는 2013년 앨범에서 “내가 새로운 장미셸”이라 노래했고 수십억 원대 작품들을 소장했다. 지난해 5월에는 일본기업인 마에자와 유사쿠가 경매에서 ‘무제’를 1억1050만 달러(약 1245억 원)에 구매하기도 했다.

바비칸은 “1월 마지막 주말 3일 간 7000여 명이 전시장을 찾았으며 전체 최소 21만 6000명이 다녀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평균 티켓 가격(16파운드, 약 2만 4000원)을 감안하면 입장 수익만 51억 원을 넘는다. 제인 알리슨 비주얼아트 최고책임자는 “사상 최대의 성과에 전율했고 젊은 세대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기에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전시의 주체가 공공 갤러리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바비칸은 런던 특별행정구역 ‘더 시티’에서 운영하는 공립 예술센터다. 그럼에도 대중성과 수익성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젊은 예술가 등 다양한 세대가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며 얻게 될 가치를 환산하면 엄청난 경제·문화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런던 문화학교 ‘RP Institute’를 운영하는 미술사가 전하현 씨도 이런 흐름을 주목했다. 그는 “미국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영국 사회에 던진 충격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은 틀림없다. 파급 효과만으로도 훌륭한 전시”라며 “최근 영국은 전시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창조산업’ 형, 대중도 쉽게 접근하는 ‘소통’ 형 전시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국내 공공 미술관도 학술적 역할을 넘어 예술의 저변을 확대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울림이 컸다.

런던=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