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맨입'에 인터넷 가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비스 업체간 경쟁을 하면서 가입자들에게 각종 사은품 공세를 하기 때문이다. 상품권, TV, 노트북 등 종류도 참 다양하다.
<본 이미지는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출처=KT)
그런데, 몇몇 사은품의 경우는 겉보기에만 그럴싸하고 효용가치가 심히 낮은 경우도 있다. IT동아의 경우 지난 11월, 사무실 이전 후 KT 본사 가입센터를 통해 인터넷 및 IPTV 결합 서비스를 3년 약정으로 신청했다. 사은품으로 노트북이나 32인치 TV, 혹은 백화점상품권 7만 원어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제안 받았고, IT동아의 회계담당자는 그 중 노트북이 가장 이득일 것으로 판단해 이를 선택했다고 한다. 다른 일을 하느라 필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미 단종된 2년 전의 저가형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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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품으로 도착한 에이서의 AO1-431-C2TR 노트북 (출처=IT동아)
내부 사양 역시 실망스럽다. CPU는 인텔 셀러론 N3050, 메모리는 2GB, 저장장치는 eMMC 32GB를 탑재했다. 현 시점에서 이 사양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 지가 궁금해진다. 본체 두께가 1.8cm로 얇은 편이라는 건 괜찮지만, 무게가 1.6kg로 묵직해서 휴대성이 마냥 좋다고 하기도 힘들 것 같다. 그나마 윈도우10 정품이 포함된 것이 최대의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실 요즘 마이크로소프트는 400달러 이하의 저가형 노트북 및 태블릿에게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사실상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정품 윈도우 탑재가 이 제품만의 이점은 아니라는 의미다.
기본적인 컴퓨팅도 하기 힘든 낮은 성능, 무의미한 저장공간
물론 단종된 제품이라고, 혹은 저사양 제품이라고 무조건 몹쓸 물건은 아닐 수 있다. 일단 전원을 켜보고 이용해보자. 간이 SSD인 eMMC를 탑재한 제품이라 처음에 소프트웨어가 거의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부팅 속도는 의외로 빠른 편이다. 약 10여 초 만에 윈도우10 바탕화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웹 브라우저를 열거나 파일 탐색기를 실행하는 등의 아주 기본적인 작업에서도 짧게는 3~5초, 길게는 10초 이상의 지연 시간이 발생한다. 그리고 각종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처음에는 그나마 빠른 편이었던 부팅 시간도 대폭 느려진다. 시스템 메모리가 2GB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중 작업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 웹 서핑을 하다가 동영상 감상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문서 작업을 하는 등의 작업도 힘겹다.
무엇보다 뼈 아픈 점은 저장공간이 32GB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 절반은 윈도우10 및 초기 설치 소프트웨어가 차지하고 있어 사용자가 쓸 수 있는 초기 공간은 16GB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은 이보다 더 적다. 윈도우 운영체제를 정상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선 각종 보안패치 및 업데이트 설치가 사실상 필수인데, 이러한 업데이트 파일이 차지하는 공간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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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업데이트 후 남은 저장공간 (출처=IT동아)
실제로 이 노트북에서 업데이트 기능을 실행해 20여개 항목의 업데이트 패치를 설치하니 남은 저장공간이 2.35GB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몇몇 업데이트는 설치하지도 못했다. 이 상태에서 각종 소프트웨어의 추가 설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그레이드 가능성도 사실상 전무
기본 사양이 낮은 노트북이라면 나중에 따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수단이라도 마련해 두는 것이 미덕이다. 일반적인 노트북은 시스템 메모리나 저장장치 업그레이드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 노트북은 그것조차 되지 않는다.
노트북의 내부. 업그레이드 기능이 전무하다 (출처=IT동아)
노트북 하단의 커버를 열고 내부를 보니 메모리 업그레이드를 위한 슬롯, 저장장치(HDD나 SSD)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SATA 포트나 M.2 포트도 없다. 메모리나 저장장치가 기판에 온보드(납땜)된 상태로 출고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상태로 끝까지 써야 한다. 그 밖의 방법으로 용량을 확장하려면 USB 메모리나 외장하드, SD카드 등을 접속하거나 클라우드 저장소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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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게 합당한 대가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최소한의 성의는 필요하다. 겉보기만 그럴 듯 하고 실제로는 활용하기 어려운, 그것도 이미 단종된 2년 전의 제품을 생색내듯 제공하는 건 아무리 봐도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금 팔리는 30만원 근처의 저가형 노트북 중엔 이보다 훨씬 쓸 만한 제품도 제법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사은품을 신청하기 전에 그 자세한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은 고객의 책임도 일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CPU가 뭔지, 메모리가 뭔지 들어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이유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 참 서글픈 일일 것이다.
참고로, 인터넷이나 IPTV, 전화를 신청하고자 할 때는 통신사(SKT, KT, LGU+ 등) 본사보다는 대리점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당장 포탈 검색창에 '인터넷 가입'만 입력해봐도 가입 사은품으로 현금이나 상품권을 수십만 원어치 제공한다는 대리점이 무수히 많다. 물론 이 역시 당연히 고객으로서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 뿐이지만, 굳이 가입을 한다면 제공되는 사은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자. 소비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다.
동아닷컴 IT전문 김영우 기자 peng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