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경력 10년째인 이 씨는 불이 난 26일도 평소처럼 환자들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경 이 씨는 환자들의 아침식사를 살피고 있었다. 갑자기 비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 씨가 ‘오작동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벨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창 밖으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는 게 이 씨의 눈에 보였다. 마음이 급했다. 한 명씩 부축해 대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는 환자들에게 수건을 하나씩 주면서 “입을 막으라”고 외쳤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전기가 끊긴 탓이다. 5층 병실은 안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자동문이다. 평소 대피훈련을 받았던 이 씨도 당황했다. 그때 소방대원들이 5층 진입에 성공해 문을 열었다. 이 씨는 소방대원과 함께 할머니들을 5층 야외공간으로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에 환자들이 떨기 시작했다. 이 씨는 시커먼 연기로 잘 보이지도 않는 병실로 다시 향했다. 휴대전화 빛에 의존해 몇 번이나 오가며 이불을 날랐다.
세종병원 2층에는 이 씨의 시어머니도 입원 중인데 다행히 목숨을 구했다. 현재 이 씨는 부산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겁이 나고 떨려서 뉴스는 보질 못하고 있다. 이 씨는 “장성 요양병원 화재(2014년)를 보고 불이 나면 환자를 꼭 지키겠다고 평소 생각했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내 도움을 고맙게 생각해주는 분이 있다면 그걸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사망한 의료진 3명 중에는 당직의사 민모 씨(59)가 있다. 민 씨는 처음 불이 난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마지막까지 불을 끄려고 애쓰다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 교수 출신이다. 아버지도 같은 의사였다. 민 씨는 밀양의 다른 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한다. 매주 목요일 밤 세종병원에서 야간 당직의사로 일한다. 불이 나기 전날인 25일 밤도 마찬가지였다.
민 씨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 치료에 적극적이고 수술도 꼼꼼하게 진행하는 걸로 유명했다. 어떤 환자라도 늘 같은 태도로 맞았다. 그래서 직원들은 그를 “진짜 의사”라고 말했다. 장례식장이 가득 차 있어 민 씨의 빈소는 아직 차려지지 않았다. 민 씨가 일하던 병원 관계자는 “소아과 의사를 해도 좋을 정도로 정말 자상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며 안타까워했다.
밀양=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밀양=권솔 기자 kwonso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