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숙녀들의 사회/제사 크리스핀 지음/박다솜 옮김/384쪽·1만6000원·창비 인생의 절벽 앞에 선 저자 자신을 억압하는 것에 저항한 여성들의 발자취 따라 여행 “고통에 대처하는 법 깨달아”
위부터 순서대로 노라 바너클, 리베카 웨스트 클로드 카엉, 모드 곤, 진 리스.
미국 문학잡지 편집장이자 서평가인 저자는, 안타깝게도 결국 자살 ‘시도’를 했다. 실패로 돌아가자 유럽으로 떠났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행선지는 독일 베를린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남부 프랑스, 아일랜드 골웨이, 스위스 로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영국 런던, 영국령 저지 아일랜드. ‘천재’ 제임스 조이스의 아내로만 불렸던 노라 바너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작가 진 리스, ‘위대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청혼을 거절한 혁명가 모드 곤,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사회적 질타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으로 평생 고통 받은 서머싯 몸 등의 흔적이 남은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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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노라는 정말 천재의 아내가 되고 싶었을까?’, ‘모드 곤은 예이츠의 뮤즈로 살고 싶었을까?’
그는 ‘기록하는 여자’가 돼 역사에 기록되기만 했던 여성들을 정면으로 끄집어낸다. 제임스 조이스나 윌리엄 예이츠를 비췄던 조명의 각도를 틀어 그들의 뮤즈이자 무대 뒤 조연으로 묻혀 있던 여성들을 비춘다. 이런 식으로 그는 책 속에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여성들을 무대 중심으로 이끌어냈다.
이 책은 방랑과 방황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저자는 몰락을 배우기 위해 방황의 장소인 베를린으로 떠난다. 진 리스의 자취를 좇아 런던으로 향하기도 한다. 카엉이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반(反)나치 선전물을 돌렸던 저지 아일랜드에서는 카엉의 묘지를 찾아 “고맙다”라는 말을 전한다. 사라예보에서는 ‘저쪽 세계의 악’을 규정짓는 것에 대해 반성하기도 한다.
저자가 누비는 유럽 도시 곳곳은 단순히 지나치는 여행지가 아니다. 예술가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기, 역사와 문화, 저자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 등이 뒤엉키며 독특한 분위기와 정서를 연출하는 장소다. 특히 크리스핀은 예술가들이 좌절하고 도망친 장소들을 주로 찾았다. 그들을 통해 사회적 압박과 구속에서 과감히 도망치는 태도를 찾고 익히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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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