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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관청 앞에 수백 명이…’ 조선시대에도 억울하면 시위 벌였다

입력 | 2018-01-27 03:00:00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채백 지음/348쪽·2만 원·컬처룩




“이때 남원읍 노소 과부 떼를 지어 모여들어 춘향을 살리라고 어사또께 등장(等狀·조선시대 여러 사람이 연명하여 관부에 올리는 소장이나 청원)을 왔는데, 인물도 어여쁘고 깨끗하게 늙은 부인, 소복을 정히 하고 수태 띤 젊은 과부, 청상 팔자 되어 궁태로 생긴 부인, 백모양전 밭 매다가 호미 들고 오는 부인…수백 명 떼과부가 동헌 뜰에 가득 차니….”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변 사또의 부당한 수청 요구를 거부해 억울하게 옥살이한다는 사연이 알려지자 남원 지역 과부들이 집단으로 관청에 몰려가 호소하는 장면이다. 조선시대에도 집단적 청원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오늘날 시위와 유사한 형태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선비나 양반 계층은 집단 민원도 대부분 문서로 했지만, 글을 모르는 백성들은 이처럼 집단으로 몰려가 구두로 사연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성들이 이처럼 일상 속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했는지를 조선시대 한글 소설 8편과 개화기 신소설 9편을 분석해 정리한 책이다.

조선시대 백성이나 천민들이 신문고를 이용하기는 매우 어려웠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신문고는 수도의 대궐에 있었고, 여러 단계마다 각각 글을 올려야 했고, 규정에 맞지 않게 신문고를 울린 이에 대한 처벌도 지나치게 무거웠다. 신문고의 명칭은 세종 16년에 승문고로 바뀐다.

이런 ‘승문고’는 신소설에도 나타난다. 이해조의 소설 ‘화의 혈’에서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잡혀 들어간 기생 선초가 “우리 지금 승문고라도 쳐서 아바지 무죄하신 발명을 하여 보십시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분석한 한글 소설에서는 ‘승문고를 친다’는 말이 안 나오다가 신소설에 와서야 등장한다”며 “이때에도 실제 제도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상징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언론의 역사에 관한 논문과 책을 여럿 냈다. 이번 책은 2014년 발표한 학술 논문 2편을 바탕으로 사례를 추가하고 자료를 보완해 만든 대중서다. 여전히 다소 딱딱하게 다가오는 면도 없지 않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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