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세종병원 화재… 제천 참사 한달만에 또 참변 1층 응급실서 불길, 고령-중증환자 유독가스 덮쳐 스프링클러 없고 의료진 부족… 대피늦어 피해 커져
새카맣게 뼈대만 남은 병원 침대 26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1층 응급실 내부를 소방대원들이 수색하고 있다. 건물 천장의 철골 구조가 뼈대만 남은 채 내려앉고 벽면은 검게 타 도저히 응급실로 보기 힘들 정도다. 이번 화재로 37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였다. 국제신문 제공
80명이 넘는 중증 노인 환자가 입원한 병원이지만 불이 났을 때 피해를 막아 줄 방화설비도, 구조해 줄 사람도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진 지 불과 한 달여 만이다. 생명을 지키려 찾은 병원이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변하는 것이 대한민국 안전의 현주소다.
병원에는 초기 화재 진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83명의 고령 중증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지만 면적이 작아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불이 번지며 병원은 아비규환이 됐다. 전기가 끊겨 병원 내부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지만 병원 비상발전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지할 수 없어 병실을 기어 나왔다. 환자를 들거나 업어서 대피시키는 병원 직원들과 곳곳에서 뒤엉켰다.
영상출처 : 동아일보 독자 제공
일부 병실은 내부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나올 수 있었다. 병실 내에서는 문을 열 수 있는 환자가 없어 외부에서 문을 부수고 한 명씩 빼내야 했다. 환자 6명은 1층 승강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탈출하기 위해 위층에서 승강기를 탄 후 유독가스에 쓰러진 것이다.
환자들을 대피시킬 의료진도 부족했다. 병상 95개가 있는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단 3명이었다. 간호사도 6명뿐이다. 간호사들이 보통 3교대로 근무하는 걸 고려하면 고령 환자 95명을 고작 2명의 간호사가 돌보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정도 규모 병원은 최소 의사 5명, 간호사 16명 이상을 운용해야 한다. 이날 화재 당시 병원에는 의사 1명과 간호조무사를 포함해 9명의 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밀양=강정훈 manman@donga.com·정재락·강성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