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도쿄 특파원
일본 총리 관저 홍보 담당자는 3주째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작년 4월 접견에 사용하는 의자를 교체한 이유를 묻자 “예방과 접견에는 여러 명이 관여한다. 이유를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땅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사소하지만 오래도록 신경 쓰이는 무엇’이 있다. 기자에겐 총리 관저 접견실 의자가 그렇다. 역대 일본 총리는 대대로 외국 특사와 각료를 만날 때 상대와 같은 의자에 앉았다. 아베 총리도 취임 후 4년 동안 같은 분홍색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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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을 만난 아베 일본 총리. 동아일보 DB
무슨 생각으로 의자를 바꾼 걸까. 분명 결정한 사람과 바꾼 이유가 있을 텐데 관저와 외무성은 적당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듯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본 기자는 “의전 실무자 수준이 아니라 총리 최측근이 바꿨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의자 교체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일본 문화 ‘오모테나시’와도 안 맞는다. 여러 일본인에게 사진을 보여줬는데 열이면 열 이상하다고 했다. 한 지인은 “과거 일본에선 다다미 무늬와 두께가 권력의 상징이었는데 그와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지인은 “외국에서 어떻게 볼지 내가 다 부끄럽다”고까지 했다.
접견실 의자로 차등을 두는 건 국제적으로도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색하고 따질 문제도 아니다. 정상이 외국 각료를 만날 때 자리 배치와 의자 선정은 주최 측 권한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 정도만 아베 총리의 의자에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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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사면초가에 빠진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1mm도 못 움직인다’며 버티는 아베 총리가 야속할 것이다. 평창 올림픽 흥행이 시급한 시점에 개막식 불참 의사를 흘리며 분위기를 흐리는 것도 답답할 터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에서 ‘감성적 조치’를 요구했을 때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응수했던 걸 기억하면 지금은 오히려 자제하는 편이라 봐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아베 정권과 어떻게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려는 걸까. 현 정권에선 정확한 현실 인식과 치밀한 전략으로 대일 외교를 주도할 전문가가 아직 안 보인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