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물공장 근로자 출신인 김동식 작가가 누리꾼과 소통하면서 엮어낸 소설집 ‘회색인간’도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단편들이 알려지며 데뷔한 무명작가인데도 출간 보름 만에 3쇄에 들어갔다. 노동으로 질식당하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려낸 단편들엔 실제 체험한 노동의 감각이 잘 묻어난다는 평이 많다. 성수동 아연 주물공장에서 일한 작가의 이력까지 더해지며 독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최근 한국 문학은 이렇게 ‘이슈 파이팅’ 작품들의 선전이 뚜렷하다. 비정규직, 양극화, 여성 문제, 정치·외교 이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 이슈나 부조리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 문학이 주로 가족이나 개인의 내면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던 것과 뚜렷이 구별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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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 역시 기성세대, 권위주의에 맞선 젊은 세대들의 반격을 그려냈다. 제목에 ‘서른’을 못 박음으로써 ‘82년생 김지영’처럼 세대성과 메시지를 숨기지 않는다. 소설가 장강명 씨도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시사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작품들이 부상하는 것은 극심한 취업난, 성 차별과 이념 갈등 등 ‘진짜 우리 문제’를 본격적으로 대변해주는 문학에 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기존 작가들이 동시대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매우 내성적인 방식으로 문학성 극대화에 주력해 왔다”며 “하지만 최근 소설들은 사회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적극성, 외향성을 띠며 문학뿐 아니라 출판계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세대성, 소재주의에 함몰될 위험은 한계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의 큰 흐름이 ‘이슈 파이팅’ 문학으로 넘어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1990년대에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며 여성의 내면을 치열하게 그린 작품들이 그야말로 사회적 작품들이었다”며 “하지만 지금 독자들이 원하는 건 내향적 문학이 아니라 다시 사회로 나가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대변해주는 문학”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