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화재참사’ 5곳 다시 가보니
○ ‘참사의 교훈’은 어디에도 없었다
빼곡한 주차장 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 차량이 이중 삼중으로 주차가 돼 있다. 이 아파트는 2006년 12월 화재 당시에도 무분별한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20분 지연됐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강남소방서는 4일 A아파트에 ‘소방통로 확보를 위해 이중 삼중 주차를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아파트 1층 현관에 붙은 공문을 보고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 주민은 “설마 또 불이 나겠느냐”고 말했다.
참사의 교훈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이곳뿐이 아니다. 5일부터 사흘간 동아일보 취재팀은 과거 화재로 인명 피해가 난 서울과 경기지역 5곳을 다시 가봤다. 주차 차량 탓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진 공통점이 있는 곳이다. 길게는 17년, 짧게는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소방차 불통’은 여전했다.
○ ‘양보와 배려’만으로 참사 피할 수 없다
골목길 점령 17년 전 불법 주·정차된 차량으로 초기 진화에 실패해 소방관 6명이 숨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주택가. 골목길은 여전히 차량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도 해당 지역은 아직 주정차 금지구역이 아니다. 일부 주민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화재 현장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불편해한다. 주정차 단속을 하면 손님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2016년 9월 일가족 5명 중 3명이 숨진 서울 도봉구 쌍문동 B아파트 화재 현장에서도 여전히 ‘겹겹이’ 주차가 반복되고 있었다. 한 경비원은 “주차 차량을 옮겨달라고 연락한 뒤 ‘경비가 불친절하다’고 관리사무소에 항의하는 경우가 있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2014년 9월 3명이 숨진 경기 시흥시 C아파트도 마찬가지. 주민들은 주차 상황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차 세울 곳이 부족한데 어떡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주차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때까지 손놓고 기다린다면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화재 현장에서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고, 주민과 지자체는 소방통로 확보를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소방청도 6월 27일 개정 소방기본법 시행에 맞춰 소방차 통행을 막는 불법 주차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무질서하게 주차한 차량의 경우 이동 과정에서 훼손돼도 보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소방대원이 책임지지 않는 미국 사례 등을 벤치마킹해 세부 시행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배준우 jjoonn@donga.com·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