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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박민우]“팬심 대신 표를 달라”… 파키아오도 대권 도전

입력 | 2018-01-01 03:00:00


대권 도전 뜻을 밝힌 파키아오. 동아일보DB

박민우 특파원

지난해 8월 세계유소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렸던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카롤리네 마헤르(32)를 만났다. 그녀는 태권도 선수 출신 최초의 이집트 국회의원이다. 이집트에서 가장 성공한 운동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선수 시절 38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130개 메달과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2013년에는 아랍-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태권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마헤르는 2015년 말 총선 때 국회에 입성했다.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지명하는 28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으로 마헤르를 선택했다.

마헤르는 “태권도가 자신을 국회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고된 훈련과 경쟁을 통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대표팀 훈련에 참가하면서 낮에는 푸조 인사관리(HR) 매니저로 사회생활을 병행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을 쪼개 자선단체 헬름(Helm)의 HR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1000명이 넘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했다.

선출직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마헤르는 열정이 넘쳤다. 여성의 권리가 미약한 이슬람국가에서 멋진 돌려차기로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전설적인 축구 스타 조지 웨아(52)를 보면서 마헤르가 떠올랐다. 마헤르가 웨아의 모습을 보고 더 큰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아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을 이뤄냈다.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 최악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축구에 모든 걸 걸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 리그로 진출해 이탈리아 AC밀란 등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며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축구선수가 됐다. 2005년 라이베리아 정치권에 입문한 웨아는 12년 만에 대권을 낚아챘다.

스포츠 스타가 정치판에서 유망한 이유는 △인지도 △순수성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웨아는 정계에 진출한 시점에 이미 ‘국민 영웅’으로 전국구 인지도를 갖고 있었다. 또한 스포츠 스타가 이룬 성취는 대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중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과 달리 스포츠에서는 정정당당한 승부가 이뤄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때 묻은 정치인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약점도 있다. 정치 엘리트들은 이들의 ‘정치적 미숙함’을 지적한다.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데 익숙한 이들에게 국가경영의 대계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웨아는 2005년 민주변혁회의(CDC)를 창당해 대권에 도전했지만 라이베리아의 민주화와 여권 신장을 위해 평생을 바친 ‘철의 여인’ 엘런 존슨설리프 현 대통령(80)에게 패했다. 존슨설리프 대통령은 미국 하버드대 출신 경제전문가이기도 해서 “‘프리미어리그’가 ‘아이비리그’와의 대결에서 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웨아는 또 한 번의 대권 도전을 통해 스포츠 스타가 갖춘 세 번째 자질을 보여줬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도전정신이다. 뼈아픈 대선 패배를 맛본 이듬해 웨아는 40세의 나이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2011년에는 플로리다 더브라이대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2년 뒤 행정학 석사까지 마쳤다. 그는 2014년 라이베리아 몽세라도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돼 처음으로 정치적 승리를 경험했다. 웨아는 이번 대선 전에 “온갖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스타 중 한 명이 됐다”며 당선을 확신했다. 스포츠 스타 출신 정치인은 많지만 대통령에 오른 건 웨아가 처음이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40)도 2022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07년 정계에 입문한 파키아오는 그해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그는 2009년 정당을 창당해 이듬해 자신의 고향 산토 토마스 사랑가니주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2016년에는 상원의원이 됐다. 여전히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파키아오는 과거 자신이 은퇴할 무렵 대선에 출마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고 인터뷰했다. 그는 올해 40세가 돼 필리핀 대통령 출마 자격(40세 이상·국내 거주 10년 이상)을 갖췄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73)은 공개 석상에서 “대통령이 될 인물”이라며 파키아오를 수차례 치켜세웠다.

훌륭한 자질을 갖춘 스포츠 스타라면 대권까지 성취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정치적 업적을 남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대중이 순진한 ‘팬심’으로 응원만 해서는 뒷감당이 어려워질 수 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