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잘 보여주는 표지가 있다.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몸통도 초록색이고 잎도 초록색이다. 잘 익은 사과 하나가 떨어지고 있다. 나무처럼 초록색인 셔츠에 사과처럼 빨간색인 멜빵 반바지를 입은 아이가 그 사과를 받으려 손을 내밀고 있다. 나뭇잎과 가지의 형상으로 보아 사과는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아이에게 살포시 던져주는 것만 같다. 나무의 몸통에는 흰 글씨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쓰여 있다. 미국 작가 셸 실버스타인이 1964년에 펴내고 지금까지도 자주 읽히는 동화의 표지다.
표지에 끌려 안으로 들어가면 소년에 대한 나무의 사랑과 희생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옛날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소년을 사랑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그리고 나무는 행복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스토리는 나무가 소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모습들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나무는 소년이 어렸을 때는 사과와 그늘을 내어주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가지와 몸통을 내어주고, 노인이 되었을 때는 그루터기까지 내어준다. 그야말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이다.
표지는 진실의 절반만을 대변하고, 나머지 절반은 스토리의 침묵에 있다. 나무도 아프다는 것. 우리를 사랑해 주는, 나무로 표상되는 타자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 한숨을 쉬는 우리를 위로해 주는 그(녀)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에서야 깨닫고 가슴을 치는 늙은 소년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스토리의 침묵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밑에서 사과를 기다리는, 표지 속의 소년을 조금씩 닮았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