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화제]2017년 관통한 소비 트렌드
지난달 30일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 평창 롱패딩을 사려는 시민들이 새벽부터 나와 번호표를 받고 입구에 줄지어 앉아있다. 평창 롱패딩(오른쪽 위)은 한정 생산한 3만 장이 모두 팔리며 4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뒤이어 선보인 평창 스니커즈(오른쪽 아래)도 7일 만에 매진됐다. 동아일보DB·롯데백화점 제공
평창 롱패딩 인기는 열풍을 넘어 광풍이란 말까지 나왔다. 한동안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3만 장만 한정 판매되면서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2배의 웃돈이 붙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백화점 입구에는 하루 전날부터 번호표를 받고 수백 명이 밤샘 대기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후속 출시된 ‘평창 스니커즈’ 신발도 당초 기획했던 5만 켤레보다 4배 많은 20만 켤레가 예약 판매되며 인기를 이었다.
열풍의 주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시중 브랜드의 반값 수준인 14만9000원이라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예년보다 이른 11월 한파 영향도 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번진 입소문의 위력도 또다시 입증됐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실속형 소비’는 장기 불황의 그늘 속에서 수년째 유통업계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번 사는 인생, 마음껏 즐기며 살자’며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치는 소비자들도 유통 트렌드의 한 축을 이끌고 있다. 황범석 롯데홈쇼핑 영업본부장은 “자신의 행복과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감하게 상품에 투자하는 소비 패턴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11인조 아이돌 그룹 ‘워너원’이 유통업계에 끼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 마케팅과 연결되면서 ‘워너원 굿즈’(goods·관련 상품)라는 수식어만 달리면 화장품, 피규어(캐릭터 모형), 음료 할 것 없이 줄줄이 완판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착용한 제품들도 굿즈 열풍에 합류했다. 김 여사가 홈쇼핑에서 산 것으로 알려진 9만 원대 흰색 정장은 착용 사진이 공개된 후 판매량이 10배 이상 급증해 품절 사태를 빚었다.
의뢰인들의 영수증을 보며 불필요한 소비에 ‘스튜핏(Stupid)’을 외치는 방송으로 올해 전성기를 맞은 개그맨 김생민 씨. 동아일보DB
허니버터칩 이후 큰 흥행 상품이 없었던 제과업계는 올해도 끝내 화제작을 내놓지 못했다. 그 대신 기존 장수 식품을 조금씩 바꿔 내놓은 것들이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거꾸로 수박바’ ‘스크류바 젤리’ ‘빠다코코낫볼’ 등이다. 제과업체 관계자는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는 신제품과 달리 장수 제품은 모양이나 포장을 조금만 바꿔 출시해도 반응이 나쁘지 않다. ‘제품 우려먹기’라는 비판이 있지만 업체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시장은 불황을 보란 듯이 피해갔다. 여름철에는 개와 고양이의 ‘원기 회복’을 위한 홍삼, 연어, 북어 등 건강식이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애견 호텔이나 애견 장례식장까지 인기였다.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지난해 1조8000억 원이었지만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2020년 6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유통업계는 백화점·대형마트에서 온라인으로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가는 해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각종 규제들로 신규 점포를 내지 못하고 성장이 정체된 유통업체들은 자체브랜드(PB)와 가정간편식(HMR), 체험형 특화 매장 등으로 수익성 개선 노력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1, 2인 가구 증가와 온라인 위주의 구매 트렌드는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흐름이어서 올해 대응력을 충분히 높였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략으로 내년에 질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