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얼마 전 중국을 다녀왔다. 국회의 새해 예산안 처리를 앞둔 시점이었다. 추 대표는 11일 6박 8일 일정으로 다시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다. 여야의 대치 국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 대표의 부재가 느껴지진 않는다.
국가적 위기가 터질 때면 해당 부처 장관의 활약상이 언론에 크게 부각된다. 국민의 관심도 집중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한 강만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랬다.
10일 공개된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세계 주요 43개국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 경제 곳곳에서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빠르고 효율적인 구조조정, 성장동력 발굴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러나 경제팀을 이끌고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역할이 돋보인다는 평가 역시 별로 듣지 못했다.
국회와 정부의 존재감이 뚝 떨어진 사이 많은 국민은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지금까지 6만 건이 넘는 온갖 청원이 올라왔다. 한 달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이뤄진 청원도 여러 건이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6일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에 대해 ‘재심 불가’를 설명하며 “정부의 역할을 계속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도 주무 장관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부 여당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언젠가부터 청와대에 가려 투명인간처럼 잘 보이지 않게 됐다.
박근혜 정부 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과거에는 일반 국민도 어느 부처 장관이 누구인지 알 정도였는데, 지금은 당 대표인 저도 장관의 이름을 다 못 외울 정도로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장관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과 업무 능력이 꼭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장관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뇌리에 남는 스타 장관들이 없는 정부는 어딘가 불안하다. 지난 정부에선 각 부처가 시키는 대로 실행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무너지자 정부도, 새누리당도 함께 붕괴됐다.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의 스태프이다. 비서진이 전면에 서면 장관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리고 국정의 모든 부담을 대통령이 직접 지게 된다. 장수가 보초를 서는 군대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7개월 전 취임사에서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은 대통령과 청와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