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과기부에 연구개발 예산권 넘길 것”… 野 “왜 권리 포기하나”
#2. 기재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28일 점심을 거르면서 A 의원 사무실을 찾았다. R&D 예산 권한 이관을 반대하는 의원이었다. 이 당국자는 R&D 예산에 대한 기재부 의견을 재차 설명했지만 “법의 근간까지 흔들면서 기재부가 예산권을 놓으려 하는 저의가 뭐냐”는 말만 듣고 자리를 떠야 했다.
R&D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을 놓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이상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기재부는 “예산 편성권 일부를 포기하게 해 달라”고 읍소하고, 야당은 “권한을 쥐고 있으라”며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 예산 편성권은 ‘행정부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 ‘입법부와 사법부가 유일하게 을(乙)이 되는 권한’으로 불릴 정도로 힘이 막강해 이런 논의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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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국회에서 이 논의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기재부는 예산 권한 이관에 강하게 반대했다. ‘경제성 평가를 간과할 수 있다’ ‘예산은 예산 전문가가 결정해야 한다’는 게 기재부의 생각이었다. 나랏돈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선 예비타당성 조사, 심의 등을 철저히 해야 하는데 어떻게 집행 부처에 맡길 수 있냐는 논리였다.
하지만 “R&D 예산권을 과기정통부에 이관하는 건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공약”이라는 여당의 압박을 무시할 순 없었다. 청와대와 국무조정실도 예산권 일부 이관에 힘을 실어줬다. 결국 기재부는 손을 들었다. 다만 기재부 내부에서는 “예산권을 함부로 줘도 되느냐”는 말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예산권을 조정하자’고 국회를 설득하는 기재부의 강도나 적극성이 내년도 예산안이나 세법 개정안 같은 다른 정부법안에 비해 약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대통령 공약에 떠밀리듯 예산권 일부를 내려놓긴 하지만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내 교통정리는 마무리됐지만 실제로 R&D 예산권 일부가 과기정통부로 넘어갈지는 불투명하다. 야당의 반대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기재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예타 권한 위탁과 R&D 예산총액 한도 설정 권한을 모두 기재부가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재위 국민의당 간사인 김성식 의원은 “지침을 명확히 한다면 예타 권한 위탁은 일부 할 수 있겠지만 예산지출 한도 설정 권한까지 과기정통부에 넘기는 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양측은 모두 예산 총액을 집행부처가 정하면 성과 관리가 힘들고 재정건전성이 우려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일각에서는 R&D 예산 권한을 어느 부처에 줄지에 대한 논의에 앞서 막대한 R&D 예산을 투입하고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따지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선진국처럼 R&D 예산 집행에 대한 조사, 분석, 평가, 감독 등 제도적 장치에 전문가 참여율을 높이고 일선 연구자들이 연구 대신 행정에 매달리는 실태를 먼저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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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