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야, 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어. 넌 어른이 되어서도 딴 사람들과는 다를 거야.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문학동네·2003년)》
고등학생 시절 나는 내가 독극물에 중독됐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물탱크 내부의 녹을 없애기 위해 방청제(防錆劑)를 뿌리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동네 어른들의 얘기를 우연히 듣고 나서부터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방청제가 몸에 들어가면 두통과 기억력 감퇴를 일으킨다고 했다. 간단한 수학 공식이 생각나지 않아 고생하던 일까지 떠오르자 나는 불치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며 혼자서 머리를 싸맸다.
지금도 매년 수능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3년 동안 온갖 마음고생을 하며 기울인 노력을 한나절 만에 평가받는 학생들이 딱해서다. 기대만큼 나오지 않은 성적에 맘 편히 잠들지 못하는 아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일들이 인생의 방향을 통째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10대 때 받은 성적표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 뚜렷해진다.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인 모모에게는 다행히도 이를 알려주는 사람이 많았다. 프랑스 파리의 이방인 거주지에서 자란 그는 “행복은 나의 편이 아니다”라며 열 살 때부터 고민에 빠진다. 정신병자였던 아버지의 병을 자신이 물려받았을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감수성이 남다른,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라며 다독여줬다. 시험 성적에 낙심한 자녀가 있다면 질책 대신 이런 위로를 건네기를 권한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