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책에 몰두하기는 겨울이 제격이다. 중국 후한 시대 학자 동우(董遇)가 책 읽을 시간 내기 어렵다는 이에게 말했다. “겨울은 한 해의 남은 시간, 밤은 하루의 남은 시간, 비 내리면 한때의 남은 시간이니 이때야말로 책 읽기 적당하다.” 책 읽기 좋은 세 가지 남은 시간, 독서삼여(讀書三餘)의 고사다.
계절에 따라 읽기 좋은 분야가 있을까? 청나라 문인 장조(張潮·1650∼1707)는 ‘유몽영’에서 ‘겨울에는 경서, 여름에는 역사, 가을에는 사상, 봄에는 문학’이라 하였다. 덧붙여 조언한다. ‘역사는 친구들과 함께 읽고 경서는 홀로 몰두하여 읽는 것이 좋다.’ 왜 겨울에 경서인가? 정신을 오롯이 집중하기(神專·신전) 좋기 때문이다.
광고 로드중
조선이든 중국이든 전통 시대 겨울나기는 힘들었다. ‘차가운 서재라 벼룻물이 얼 텐데, 숯 한 섬으로 그런대로 질화로의 훈기를 갖추고, 백지 한 묶음은 혹시라도 책을 베끼는 데 쓰기 바라네. 붓이 얼어 급히 쓰네’(박상수 옮김). 퇴계 이황이 제자 조목에게 보낸 편지다. 서양이라고 달랐을까? 14세기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는 추운 겨울밤 연구에 몰두하는 제자 보카치오에게 귀한 털외투를 주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이런저런 약속도 많이 잡히고 마음이 분망해지기 쉬운가 하면, 추위에 움츠러들며 자칫 기분이 가라앉기도 쉽다. 평정을 되찾고 기분을 다스리는 데 책 속으로 피한(避寒)하는 겨울밤 독서만 한 것도 드물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