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시즌2]<17> 네살 아들 잃은 엄마의 호소
14일 경기 부천시에서 만난 고 최하준 군의 어머니 고모 씨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최 군은 지난달 1일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 주차장에서 제동장치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채 경사로를 미끄러진 차량에 부딪혀 숨졌다. 고 씨는 안타까운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아들의 이름과 얼굴 공개에 동의했다. 부천=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 제동 풀린 차량에 아이가 또 쓰러졌다
사고는 최장 10일의 추석연휴가 시작됐던 지난달 1일 벌어졌다. 최하준 군 가족은 연휴 중 있었던 할아버지 생신을 겸해 경남 창원시 집에서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로 나들이를 왔다. 오전 9시 40분 동문주차장에 주차한 아빠 최모 씨(33)는 아내 고모 씨(35)와 함께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고 씨 옆에는 하준 군이 서 있었다.
14일 경기 부천시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고 씨는 “아무 잘못 없는 하준이가 왜 숨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임신 중이어서 사고 후 줄곧 병원에 있느라 고 씨는 하준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지 못했다. 하준이는 사고 하루 전 사준 코트를 입고 뜨거운 화장로로 향했다.
지금도 고 씨 가족은 하준이와의 추억이 남은 창원 집에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천에 있는 하준이 이모 집에 있다. 창원의 전자업체에서 에어컨 개발 업무를 하던 하준이 아빠는 일주일에 3번만 집에 내려가지만 일부러 늦은 밤에 들어가 잠만 자고 나온다. 하준이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다. 부부는 지금도 둘째 딸이 볼까 아이가 잠든 밤에만 눈물을 삼킨다.
○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던 사고였는데…
고 씨 부부는 하준이의 억울함을 풀고 싶어 도로교통법을 뒤졌다. 하지만 법 어디에도 비탈진 곳에 ‘주차 시 반드시 변속기를 파킹 위치에 놓거나 고임목을 놓고, 운전대를 우측으로 돌려 차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의무를 규정한 곳이 없었다. 도로교통법 49조에 ‘원동기(시동)를 끄고 제동장치를 철저하게 작동시켜야 한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사고가 난 서울랜드 주차장처럼 도로는 아니지만 차량이 수시로 드나드는 ‘도로 외(外) 구역’의 안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소관인 주차장법은 기계식 주차장에 대한 안전관리만 명시하고 있다. 비탈길과 같은 도로 형태별 안전조치, 안전 요원 및 경고문 배치와 같은 대책이 없다. 법적으로 도로가 아니다 보니 음주와 약물에 의한 사고가 아니면 경찰 신고와 조사의 의무도 없다. 경찰이 집계하는 교통사고 통계에 도로 외 구역에서의 사고는 빠져 있다. 준공 전 모든 도로가 거치는 교통안전평가를 받지도 않는다. 어린이가 많이 다니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 공원 등이 법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고 씨가 시 홈페이지에 올린 사고 관련 질의에 “경고문 부착, 안내방송을 철저히 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 더 늦기 전에 ‘하준이법’ 만들어주길
6일 고 씨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경사진 주차장의 경고문구 설치를 의무화하고, 운전자의 제동의무 미비로 인한 사고 시 처벌할 근거를 마련해 달라. 민 의원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국민청원을 올렸다. 마감일은 12월 5일. 바로 하준이의 생일이다. 청와대가 답변을 해야만 하는 20만 명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15일 낮 현재 4만5000여 명이 동참했다.
최하준 군의 어머니 고모 씨가 경사진 곳에서 주차하는 차량에 대한 제동 조치를 의무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하준이법) 통과를 촉구하며 이달 6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청원(www1.president.go.kr/petitions/26517). 16일 0시 기준 4만8000여 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부부는 하준이의 유해를 경기 용인시 추모시설에 안치했다. 공교롭게도 2015년 어린이집 앞에서 제동장치가 풀려 미끄러진 SUV에 치여 숨진 이해인 양의 유해도 이곳에 안치돼 있다. 같은 유형의 사고로 숨진 해인이와 하준이는 봉안당 1, 2층에 자리했다. 부부는 매주 하준이를 만나러 갈 때마다 해인이에게 “하준이 잘 부탁해”라고 인사한다. 봉안당 내 하준이 봉안함 앞에는 큰 창문이 있다. 그 너머에 아빠 회사에서 만든 에어컨이 보인다. “아빠가 만든 에어컨 보며 외롭지 말라”는 아빠의 바람을 담아 고른 자리다.
부천=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