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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할 일은 자녀에게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

입력 | 2017-11-15 03:00:00

[매일 학원 가는 아이들]정유숙 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




“금연이 상식이 된 것처럼 과도한 사교육이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필요해요.”

정유숙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사진)은 3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교육 부작용’ 진료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부 넉넉한 부모가 아니라면 보통은 허리띠를 졸라매서 돈을 아껴 자녀를 학원에 보낸다. 부부가 맞벌이라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돌리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그런 부모의 희생에 자녀의 학력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수반되다 보니 아이가 “힘들다”고 호소해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 “지금까지 버텼는데…” “조금만 더 하면…”이라며 아이를 학원으로 밀어낸다. 과도한 사교육에 대한 사회 전체의 경계심이 높아지지 않으면 부모도 아이도 피해자가 되는 이런 ‘사교육 고리’를 끊기 쉽지 않다.


이미 3년 전부터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학습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갈수록 선행학습을 시작하는 시기가 빨라지고 범위는 더 넓어졌다. 정 이사장은 “개인의 용기만으로, 법적인 규제만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나이에 경쟁을 강요당하는 영유아들에게 사교육으로 인한 이상증상이 점차 늘어난다는 게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상당수 부모는 아이가 뒹굴뒹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막연히 불안해한다. 정 이사장은 “아이들 뇌의 용량은 제한돼 있는데 이를 넘어서는 정보는 불필요하다”며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수록 즐거운 일보다 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 많은데 어린 시절부터 학원 가라는 독촉만 당한다면 일찍 지치게 된다”며 “부모가 할 일은 평생 자산이 되는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큼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암기→시험으로 진행되는 사교육 시스템은 더욱 문제라고 했다. 빽빽하게 짜인 학원 시간표는 오히려 아이들의 창의성을 말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이사장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 창의성은 생기지 않는다”며 “무얼 배웠다면 혼자 응용하고 실수도 해보면서 ‘나만의 배움’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아이들이 엉뚱한 소리를 해도, 남들보다 느려 보여도 어른의 시각으로 재단하지 않고 귀 기울여야 한다”며 “아이의 내면을 탐구하는 부모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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