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한 송이만 핀 것은 아직 봄이 아니다. 온갖 꽃이 함께 피어야 진정한 봄이다.”(문재인 대통령)
“봄이 오면 강물이 먼저 따뜻해지고 강물에 있는 오리가 따뜻한 봄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있다.”(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동남아시아를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리 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문 대통령이 양국 경제·문화 교류 관계를 조속히 전면적으로 정상화하자고 촉구한 데 대해 리 총리는 관계 정상화을 위한 한국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리 총리와 만난 것은 처음이다. 이날 회담은 당초 예정됐던 시간을 20분가량 넘긴 50분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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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던 리 총리는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며 ‘춘강수난압선지(春江水暖鴨先知)’라는 중국 시인 소동파의 시구로 맞받아쳤다. 오리가 따뜻한 봄을 체감하려면 강물이 먼저 따뜻해져야 한다는 말로 한중 관계 정상화를 위해선 한국의 지속적이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달한 것. 리 총리는 “예민한 문제를 단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적극적인 진전이 이뤄졌다”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합의를 우회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중국 내 한국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 보조금 제외와 반덤핑 수입규제 제외 등 사드 보복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중국의 보복 조치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배터리 보조금 문제는 7월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 미팅에서 문 대통령이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인한 피해를 묻자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이 언급한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또 미세먼지에 대한 양국 공동대응과 원-위안화 직거래시장 발전과 양국 금융협력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제안했다.
이에 리 총리는 “중한 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추운 겨울이 지나고 훨씬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다만 사드 보복 철회 요청에 대해선 “배터리 문제와 금융문제 등은 배석자 중에 책임자가 있으니 앞으로 계속 협의하자. 실질적 논의 전망은 밝다”고 했다. 현안 해결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는 않은 셈이다. 미세먼지 대응에 대해선 “양국이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리 총리는 북핵 문제에 대해선 “(북한이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대화 재개 여건을 조성하는 등 국면 전환을 위한 창의적 해법을 마련키 위해 노력하자”고 합의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감행하지 않도록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고 한국이 불필요한 군사적 압박을 자제하는 등 한중이 공조해 적극적으로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추진하자는 것. 특히 ‘창의적인 해법’ 마련에 합의한 것도 주목을 끌었다. 중국이 북한의 추가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에 중단하는 ‘쌍중단’을 제시하는 반면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이 대화 국면 전환을 위한 새로운 해법을 함께 마련해보자는 것. 또 미국이 6자 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한중이 북핵 해결을 위한 새로운 협의틀을 마련하는 방안 역시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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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