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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성철]‘악역 검사’ 탓할 일 아니다

입력 | 2017-11-13 03:00:00


전성철 사회부 차장

수사는 물론 재판 과정도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던 한 유력 정치인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법원을 취재하던 후배 기자는 공판 검사 S를 ‘버럭 S’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법정에서 피고인 측과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악을 쓰고 다투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정작 검찰 동료들 사이에서는 S 검사는 ‘아줌마’로 통한다. 얼굴이나 체격 모두 천생 남자인 S 검사가 아줌마 소리를 듣는 것은 어머니처럼, 아내처럼 늘 주변을 따뜻하게 챙기는 까닭이다.

S 검사의 법정 안 모습이 평상시와 정반대인 것은 그가 맡은 역할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S 검사처럼 수사나 재판에서 악역을 하는 사람을 ‘배드 커버(Bad Cover)’라고 부른다. S 검사 같은 배드 커버가 필요한 이유는 수사, 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다. 배드 커버의 거친 언행은 피고인(또는 피의자) 측을 자극해 실수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옆자리에서 신사적이고 논리적인 언변을 펴는 동료 검사, ‘굿(Good) 커버’를 돋보이게 만들어 검찰이 의도한 메시지를 재판부에 뚜렷하게 전달하는 효과도 있다.

문득 S 검사의 옛 별명이 떠오른 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변창훈 검사의 불행한 죽음 때문이다. 변 검사의 빈소 안팎에서는 수사팀이 수사 대상자들을 너무 모질게 대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정원 법률보좌관실에서 변 검사를 보좌했던 이제영 검사 이야기는 특히 화제가 됐다. 검찰은 이 검사의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구속 필요성을 강조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프레젠테이션에는 한 종편 시사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이 검사 등 국정원 파견 검사들을 “출세하려고 그런 일(수사 방해)을 했다”고 비난한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변 검사의 빈소에서는 이 검사 집 압수수색 당시 상황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지난달 27일 오전 이 검사는 집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온 후배 검사와 마주쳤다. 이 검사는 후배 검사에게 “들어와서 편하게 일하시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A 검사는 함께 간 수사관들에게 “저런 말에 흔들리면 안 된다”고 다그쳤다고 한다. 겁먹은 부인과 어린 세 자녀 앞에서 애써 품위를 지키고 싶었던 이 검사에게 망신을 준 것이다.

이 검사를 몰아세운 일로 구설에 오른 검사들은 아마 배드 커버였을 것이다. 검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동료에게 저런 언행을 하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 아마 그들도 평소에는 S 검사처럼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 대상이 검사이다 보니 평소보다 더 위악(僞惡)을 떨 수밖에 없었으리라. 또 그 때문에 변 검사의 자살 소식에 누구보다도 더 가슴 아팠을 것이다.

변 검사의 죽음을 두고 수사팀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늘 하던 대로 수사를 했는데 또다시 사람이 죽었다는 걸 반성해야 한다.

변 검사의 유족은 “왜 오전 7시에 압수수색을 하느냐. 잠옷 차림인 아이들 앞에서 그러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검찰의 ‘망신 주기’ 수사를 비판했다. 변 검사는 생전에 수사팀 외에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언론에 유출돼 일방적인 보도가 쏟아진 데 대해서도 억울해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복기하면서 다른 길은 없었을까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변 검사와 검찰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을 위로하는 일이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