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낯섦/오르한 파묵 지음·이난아 옮김/652쪽·1만6800원·민음사
소설 ‘내 마음의 낯섦’의 배경이 되는 도시 이스탄불. 이 책은 이스탄불의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전통 음료 보자를 팔며 살아가는 메블루트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동아일보DB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저자 오르한 파묵(사진)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나고 자란 터키 이스탄불에 대입해 말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의 아홉 번째 신작 ‘내 마음의 낯섦(A Strangeness in My Mind)’의 배경 역시 이스탄불이다. 작가는 열두 살에 시골을 떠나 이스탄불로 이주한 주인공 메블루트의 생애를 따라 동서양의 문화와 사상, 종교, 계급이 충돌한 이스탄불의 40여 년 현대사를 씨줄과 날실처럼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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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블루트는 꼬여버린 상황에 대해 남을 탓하기보단, 그저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한다. 오히려 잠든 라이하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잘 때 책임감을 느끼고 행복해지려 노력한다. 메블루트는 라이하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운명의 장난은 훗날 쉴레이만의 고백에서 밝혀진다. 쉴레이만은 라이하에게 자신이 사미하를 맘에 둬 일부러 메블루트에게 사미하의 이름을 라이하로 알려줬다고 털어놓는다. 라이하가 서른 살에 숨지게 되고, 혼자가 된 메블루트는 마흔을 전후해 20년 전 연애편지의 진짜 주인공이었던 사미하와 재혼한다. 하지만 메블루트가 보자 통을 들고 거리를 나서며 혼자 뇌까리는 말은 독자의 허를 찌른다.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라이하를 사랑했어.”
저자의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처럼 신작 역시 주인공 외에도 여러 화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그려나간다. 그 과정에서 라이하가 여동생을 억지로 시집보내려는 아버지에게 “우리는 파는 물건이 아니에요”라고 항의한다거나 자신을 때리지 않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대목에서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에 대한 비판의식도 느껴진다.
메블루트의 사랑과 삶 외에도 소설을 읽는 내내 이스탄불의 변천사를 마주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스탄불 부동산 발전의 연대기, 건축물의 변화상, 전기 소비의 역사, 정치적 재앙과 탄압 등 터키 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사실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신작은 지난해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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