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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도쿄 모터쇼가 던진 돌직구

입력 | 2017-11-09 03:00:00


5일 폐막한 일본 도쿄 모터쇼에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미래 이동수단들이 전시됐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도요타 ‘파인컴포트 라이드’와 ‘아이워크’, 혼다 ‘로보카스’, 야마하 ‘MWC-4’. 각 회사 제공

석동빈 기자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1975년 최초의 독자 모델 현대자동차 ‘포니’가 나온 이후 최근까지 수직에 가까운 성장을 해왔습니다. 축적된 기술적 유산이나 자본이 빈약한 상황에서 40여 년 만에 연간 글로벌 자동차시장(9000만 대)의 10분의 1을 담당할 정도로 커진 것이죠.

한국인 특유의 추진력과 기업가 정신,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정책적인 지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 5000만 명 미만의 국가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가진 자동차산업을 이뤄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자동차산업은 고용과 산업 파급 효과가 가장 큰 분야여서 굶주렸던 국민들을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성장세가 꺾이는 것이야 당연하다지만 풍랑 속에 레이더가 고장 난 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항로가 불분명합니다.


5일 폐막된 일본 도쿄 모터쇼를 보면서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명확해졌습니다. 이번 도쿄 모터쇼의 규모는 오히려 예전보다 줄었습니다. 미국 빅3를 비롯해 재규어, 랜드로버, 페라리,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같은 브랜드들이 대거 불참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일본 브랜드의 ‘동네잔치’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뜨거운 것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바로 ‘다양성’과 ‘도전’입니다. 이번 도쿄 모터쇼의 주제는 ‘자동차를 넘어(Beyond the Motor)’인데 전시 내용도 그에 걸맞게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인간의 미래 모빌리티(Mobility·이동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들을 쏟아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동차의 경계를 넘어 브랜드 특성에 맞는 신개념 이동수단을 선보인 것이죠.

도요타는 3분 충전으로 1000km 주행이 가능한 수소 연료전지차 ‘파인컴포트 라이드’를 공개했습니다. 또 1인 이동수단인 ‘아이워크’, 2인승 경차 ‘아이라이드’, 연료전지버스 ‘소라’ 등을 내놓으면서 “2040년부터는 내연기관의 힘만으로 달리는 자동차는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닛산은 에탄올 연료전지차와 자율주행 전기차인 ‘IMx 콘셉트’를 공개하고, 내년부터 세계 최고의 전기차 레이스인 포뮬러E에 진출한다고 밝혔습니다. 혼다는 인공지능 로봇 ‘아시모’를 개발했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자동차 ‘로보카스’와 넘어지지 않고 스스로 균형을 잡는 전기모터사이클인 ‘라이딩 어시스트-e’를 전시했습니다. 야마하에선 4바퀴인 ‘MWC-4’, 3바퀴인 ‘트리타운’과 ‘LMW’ 같은 새로운 1인용 모빌리티를 선보였습니다. 1인 가구, 혼밥, 혼술로 상징되는 ‘1코노미’ 시대를 맞아 다양한 1인용 이동수단이 쏟아진 것이죠.

이번 도쿄 모터쇼를 통해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항로에 첨병을 파견해 가능성을 타진하며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자동차’라는 개념이 ‘포괄적인 이동성’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평범한 전기차와 연료전지차 몇 종류만 내놨을 뿐 과감하고 다양한 도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포장길을 달리는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이나 내연기관 기반의 고성능 N브랜드, 후륜구동 스포츠 세단 ‘G70’ 등 과거 시간에 머물러 있는 인상이 강합니다. 새로운 과목의 숙제가 쏟아지고 있는데 옛날에 풀지 못한 숙제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는 느낌이랄까요.

4개의 바퀴에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박스형 자동차 시장에선 상품성이 조금 떨어져도 가격 경쟁력이나 세련된 디자인으로 대응이 가능했지만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자동차의 용도 자체가 달라져 싸움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는 자동차 소비자들의 학습입니다. 새로운 이동수단의 시장이 형성되려면 소비자들이 적응하고 이해하는 학습시간이 필요한데 국내에선 이런 시도가 거의 없습니다. 시장이 빨리 커지지 않으면 투자 손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집니다. 자동차회사들은 현재 전기차 1대당 평균 1000만 원에 가까운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도쿄 모터쇼에선 이를 위해 ‘도쿄 커넥티드 랩 2017’이라는 이벤트 공간을 마련해 관람객들이 미래의 이동수단을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히 알고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동차회사와 정부가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다시 춥고 배고픈 시절을 맞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