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결과를 보니 모든 응답에서 일관되게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바로 영재의 발굴부터 교육, 진로 탐색에 이르기까지 어느 응답에서도 ‘학교’나 ‘선생님’이 1순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영재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으로 ‘스스로 학습, 탐구하려는 마음’(71.8%)을 압도적인 1위로 꼽았고 ‘선생님의 지도’(5.4%)는 미미했다. 영재성 계발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는 선생님보다 ‘부모님’이었다. 궁금증은 주로 △인터넷 검색(44.6%)이나 △책(14.6%)으로 푼다고 했다.
학부모 설문 결과를 보면 공교육은 영재 교육에서 기능을 거의 못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영재성을 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재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학교 커리큘럼’, ‘담당 교사의 언행 및 태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아이의 영재성이 가장 많이 약화됐다고 답했다. 교사가 아이의 영재성을 알아봐 주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질문을 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문제 아이’로 취급해 친구 관계마저 나빠졌고, 제대로 지적 욕구를 채우지 못해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게 됐다고 한다. 때로 이들에게 영재성은 선물(gifted)이 아닌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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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단장은 “영재 교육은 장애아 교육처럼 ‘특수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사교육 및 입시 부작용 우려 때문에 정책적으로 소외받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교육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모든 아이는 각자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해외에서는 정서장애가 많은 영재들에게 심리 돌봄까지 병행하며 특수교육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은 헌법정신과 학교법에 근거해 ‘개별화 교육’을 추구하고 학생 개개인의 잠재능력에 맞는 영재 교육을 제공한다. 싱가포르와 이스라엘은 고도 영재를 별도로 구분해 육성한다. 영국은 교원 양성 과정에 영재 교육을 필수로 다뤄 교사들이 이들을 적절히 구별하고 맞춤 교육으로 연계시킬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들 나라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독일에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재 교육은 엘리트 교육이며 특권층을 위한 교육’이라는 인식이 강해 공교육에서 언급조차 민감해했다. 30년 전 선진국의 상황이 우리의 오늘과 사뭇 닮아 있는 셈이다.
창의재단이 80주년을 맞을 때쯤이면 한국 영재들도 ‘날개를 펴는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물론 그 전에 영재가 아닌 아이를 영재로 만들려는 한국 학부모들의 과욕부터 내려놔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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