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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신 기술 선택… 세계 최고 匠人돼서 후배 키울래요”

입력 | 2017-11-02 03:00:00

44회 국제기능올림픽 종합 2위, 3人의 금메달리스트를 만나다




지난달 14∼19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44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채승우(냉동기술), 조겸진(실내장식), 허동욱 씨(웹디자인 및 개발·왼쪽부터)가 각자 경기에 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특성화고로 진학해 세계 최고 기술자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지난달 19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막을 내린 44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 2위(총점 279점)를 차지했다. 한국은 1967년 스페인 대회에 첫 출전한 이후 19번이나 종합 우승을 차지한 ‘기능 강국’이다. 특히 2007년 일본 대회부터 2015년 브라질 대회까지 내리 5연패를 달성한 뒤 이번 대회에서 6연패를 노렸지만 2021년 상하이 대회(46회)를 앞두고 집중 투자에 나선 중국(총점 281점)에 밀렸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은 이번 대회에서 금·은·동메달 각각 8개, 우수상 16개를 따내며 기능 강국으로서의 위용을 증명했다. 특히 대학 진학 대신 특성화고교를 선택해 기술을 연마한 청년들의 활약에 많은 박수가 쏟아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대회 금메달리스트 3명을 만났다.

○ 어린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

“당연히 딸 사람이 땄다.”

이번 대회 ‘냉동기술’(냉동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기술)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채승우 씨(20·삼성중공업)를 두고 대회 관계자들이 내린 평가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던 채 씨는 경기 군포 산본공고 재학 때부터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났다. 채 씨를 지도한 문현주 영동경원세기 대표는 “1학년 때 처음 봤는데, 재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고교생답지 않게 진지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채 씨를 각별히 지도했다. 채 씨가 있는 경남 거제까지 2주에 한 번씩 방문해 각종 기술을 전수했다. 인천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에서 합숙훈련을 할 때는 거의 매일 방문했다. 채 씨는 “선생님 덕분에 심적으로 많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정작 대회를 앞둔 평가전에서 채 씨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기술을 연마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채 씨는 “최종 승부는 대회에서 판가름 나는 만큼 (평가전 결과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며 “점수에 연연하기보다 평가전에서 나타난 약점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과 체력은 물론이고 어학능력도 키워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는 기술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내 기술도 예술로 인정받았으면…”

‘실내장식’(목재 등을 활용해 건축물 실내와 조형물 등을 장식하는 기술) 종목은 난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국내 대회에선 부드러운 목재를 쓰지만 국제 대회에선 딱딱한 나무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에 몇 배 힘이 더 든다. 대회에 쓸 도구를 준비하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다. 이 종목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조겸진 씨(19·에몬스가구)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48kg에 불과했던 체중을 68kg으로 늘리면서까지 구슬땀을 흘린 끝에 값진 금메달을 따냈다.

조 씨는 서울 한양공고에서 목공 기술을 배웠다. 처음에는 취업을 위해서였지만 기술이 손에 익고 장식물을 하나씩 완성할수록 만족감을 느꼈다. 결국 조 씨는 세계 최고의 숙련 기술인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대표 선수가 됐다.

그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체중을 늘리고 체력을 보충하느라 애를 먹었다. 심리적 압박감이 무척 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신념으로 버텼다. 조 씨는 “단순히 나무로 만든 인테리어로 보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작품에 들어가는 노력과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며 “실내장식을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끝을 보는 승부욕

‘웹디자인 및 개발’(주어진 요구조건에 따라 특정 주제의 웹사이트를 제한 시간 내에 제작하는 기술) 종목에서는 허동욱 씨(20·한화테크윈)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35개국이 출전해 뜨거운 경쟁을 벌인 이 종목에서 한국은 허 씨의 우승으로 3연패를 달성했다.

허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컴퓨터게임을 하다 문득 게임 개발에 호기심이 생겨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이후 컴퓨터 기술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특성화고 진학을 희망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허 씨가 대학에 가길 바라면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를 중재한 이는 아버지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지론에서다.

허 씨는 경기 성남 양영디지털고에서 기술을 연마한 끝에 당당히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허 씨를 지도한 안창우 교사는 “지방 대회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입상을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경험으로 만들어 크게 성장했다”며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볼 정도로 승부욕이 매우 강한 청년”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웹사이트의 주제는 대회 시작 90일 전 공개했다가 갑자기 사흘 전 주제를 바꿔 이 분야 출전자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아부다비 현장에서 바뀐 주제를 받아든 허 씨는 훈련장에서 밤을 지새웠다. 평소 본인이 만든 홈페이지에 직접 올려놓은 ‘오답 노트’가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허 씨는 “천부적인 재능은 없지만 남들보다 끈기 있게 매달리는 의지력으로 금메달을 딴 것 같다”며 “아버지께 금메달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