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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술 한잔에 그림 한점 감상… “갤러리 같은 야시장”

입력 | 2017-11-02 03:00:00

[관광 명소로 진화하는 전통시장]<3·끝> 광주 대인시장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된 광주 ‘대인시장’은 광주지역의 젊은 예술가와 전통시장 상인들이 공존하는 전통시장이다. 문병남 대인시장 상인회장이 시장 상인들을 그린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위쪽 사진). 시장 근처에는 광주의 전통 예술을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예술의 거리’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광주=손가인 기자 gain@dong.com

광주 동구 제봉로의 ‘대인시장’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갤러리 같다. 들어서는 순간 천장 아케이드 아래 걸린 여러 점의 큰 그림이 눈길을 끈다. 시장 안에 자리를 잡은 지역 예술가들이 직접 그린 시장 상인들의 모습이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상인들의 굳센 미소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기차를 타고 광주송정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면 금남로4가 역이 나온다. 5분 정도 거리의 대인시장은 여러 골목으로 이뤄져 있다. 시장을 돌아보고 있자면 마치 커다란 미로를 탐방하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다.

1959년 공설시장으로 문을 연 대인시장의 골목 곳곳에는 예술가들이 그려 넣은 앙증맞은 벽화가 가득하다. 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시장이지만 젊은 예술가들의 손길이 닿아 전통과 젊음이 공존하는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문병남 대인시장 상인회장(73·사진)은 “우리 시장은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공존하는 시장”이라고 소개했다.

○ 젊은 예술가 발길로 활기 찾아

대인시장은 1920년대 광주역 주변에 노점상이 모이면서 만들어진 시장이다.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6·25전쟁 직후였다. 한때는 광주 서구의 양동시장과 함께 광주지역 2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1990년대 인근에 있었던 역과 도청, 시청이 모두 자리를 옮기자 빈 점포가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지역 주민들의 발길조차 끊겼다. 2005년 아케이드와 주차장, 화장실을 새로 지었지만 상권은 살아나지 않았다. 400개가 넘는 상가 중 절반이 문을 닫았다.

어려움을 겪던 대인시장은 2008년 광주에서 열린 비엔날레를 계기로 탈바꿈한다. 지역 예술가들이 옛 광주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통시장에 반해 하나둘 입주하기 시작한 것. 시장의 싼 임대료도 예술가들을 끌어 모은 좋은 조건이었다. 또 입주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 그해 광주비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으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복덕방 프로젝트’가 대인시장에서 열렸다.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광주시는 이슈가 된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고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고 지역 곳곳에 있던 젊은 예술가들이 대인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시장 구석구석이 벽화와 조형물 등 예술작품으로 채워졌고, 낡은 시장은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매력의 ‘예술시장’이 됐다.

○ 야시장·예술을 접목한 전통시장

여기에 시장 상인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더해졌다. 대인시장의 백미는 매주 토요일 오후 7∼11시에 열리는 ‘야시장’이다. 문 회장은 “전임 상인회장의 아이디어가 지금의 야시장 문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전통시장을 둘러본 전임 회장이 ‘우리도 퇴근하는 손님을 겨냥해 밤늦게까지 가게를 운영해 보자’며 아이디어를 냈고, 시장 발전 계획서까지 작성해 광주시에 제출했던 것. 문 회장은 “대인시장이 우리나라의 첫 번째 야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던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는 야시장 콘셉트를 접목한 ‘별장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토요일 저녁이면 시장 골목골목은 먹을거리와 예술작품으로 가득 찬다. 먹을거리는 시장 상인들 몫이다. 시장 안 국밥거리도 사람들로 가득 차고 대패삼겹살 등 안줏거리도 인기가 많다. 예술가들은 직접 손으로 만든 작품을 들고 플리마켓에 참여한다.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좌판은 신청한 예술가 누구에게나 무료다. 현재 80여 명의 작가가 야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시장 내 전기 등 설비도 무료다. 원활한 야시장 진행을 위해 예술가들이 직접 차량 통제 등 질서 봉사에 나선다. 플리마켓과 먹을거리 점포 외에도 클래식과 국악 등 다양한 공연까지 마련된다. 문 회장은 “우리 시장의 발전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시장은 하룻밤에 5000여 명이 시장을 찾을 만큼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시장 내의 상설 전시공간인 ‘한 평 갤러리’도 대인시장만의 특징이다. 2012년 연중 상설 운영되는 전시 공간으로 개관했지만 지금은 매월 한 차례씩 주제를 바꿔가며 전시를 하고 있다. 시장 내 점포를 한 평 남짓한 여섯 개의 공간으로 분할해 최대 여섯 작가에게 전시 장소를 대여한다. 지역의 젊은 작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작년에도 총 11차례의 전시를 진행하며 지역의 문화관광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 남은 숙제도…지원·인식변화도 여전히 필요

대인시장은 2015∼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도 선정됐다. 관광과 문화, 특산품 등 지역 고유의 자원을 연계해 전통시장을 개발하고 특화 시장을 육성한다는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대인시장에는 야외·실내 쉼터와 대형 스크린 등이 설치됐고 상인 교육도 지원받았다. 대인시장은 예술을 접목한 특성을 살려 ‘예술시장’으로서 모습을 갖춰 나갔다.

대인시장은 정부로부터 현재 5억여 원을 지원받고 있다. 이 비용으로 시장 내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야시장 운영 지원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 문 회장은 “대인시장이 지금까지 꾸준히 변화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분야에서 시장을 도와준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원이 2018년까지만 이어진다는 점이 큰 걱정거리다. 문 회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역할만 했던 시장이 하나의 관광 콘텐츠가 된 것은 꾸준한 교육 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상인의 의식이 변하고 있는 중인데 지원이 갑자기 끊기면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힐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야시장의 성공으로 시장이 과도하게 상업화되는 것도 문제다. 처음에는 옷과 잡화 등 다양한 상점이 야시장에 참여했지만, 먹을거리를 찾는 손님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보고 상인들이 음식 장사로 업종을 바꾸기 시작한 것. 젊은층이 유입돼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한 것은 좋지만 다양성이 결여된다는 문제점도 생겨 해결해야 할 숙제가 늘고 있다.

문 회장은 “대인시장은 아직 성장하고 있는 단계이므로 좋은 제도가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시장들도 대인시장의 사례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광주=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