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사고 계기로 분출된 非반려인들 분노와 반감 집단극단화 현상 엿보여 라이프스타일도 극에서 극… 소비에서 절약으로 리셋버튼 균형과 다양성 존중 통해 극단적사고 폐해 경계해야
고미석 논설위원
궁금증이 생긴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다 하고, 반려견인의 무지와 무례함에 대한 불만과 스트레스가 이 정도로 쌓이는 동안, 왜 여론공간은 잠잠했을까. 집 강아지가 애완견에서 어느덧 반려견으로 호칭이 달라지더니, 개주인도 ‘보호자님’으로 덩달아 변했다. 반려동물을 테마로 한 ‘펫방’도 늘었다. 개는 살아 있는 완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상전도 아니다. 한데 개의 권익 신장이 급격히 진행되는 와중에 이에 토를 다는 견해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어느 날 총궐기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연상되는 것이 있다.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언급한 집단극단화와 사회적 폭포 현상.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교류할수록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집단극단화. 이를 한껏 부풀리는 것이 바로 사회적 폭포 현상으로 실제로 내가 아는 정보 대신 남들의 생각에 근거해 판단을 내린다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집단의 세몰이 양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라이프스타일에서도 극단주의는 엿보인다. 작년부터 2030세대에게 현재 행복에 집중하자는 욜로(You Only Live Once)가 화두였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이 화두는 스트레스 해소나 재미를 위해 돈을 써버리는 ‘홧김비용’ ‘탕진잼’ 같은 소비풍조로 이어졌다. 욜로를 소비충동으로 오역하는 상황에서 절약의 미덕은 왠지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런 충동적 소비생활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요즘 다시 절약을 주목하는 이른바 ‘짠테크’로 리셋 버튼이 눌러졌다. 개그맨 출신 김생민이 방송에서 의뢰인들의 소비를 분석해 과소비를 꾸짖을 때 외치는 ‘스튜핏(stupid·어리석은)’이란 말이 유행어로 각광받는다. 대세를 좇으면서도 소비피로증은 어지간히 부담스러웠나 보다.
스웨덴 사람들의 지혜인 ‘라곰’에 눈길이 간다. 중용과도 비슷한 말인데 ‘적지도 많지도 않고 딱 알맞은, 적당한’이란 의미다. 극단과 모순이 뒤섞인 공동체가 우리만의 고민은 아닌 터라 지구촌은 라곰을 주목하고 있다. 의미는 상황마다 조금씩 변한다. 음식 먹을 때는 절제, 인테리어에서는 ‘적은 것이 더 낫다’를 뜻한다. 깨어 있음, 지속가능성의 개념으로도 해석된다. 여기서 적당함이란 ‘대충’ ‘게으름’과 다르다. 과잉과 극한을 피하자는 것일 뿐. 모든 영역에 중간지대가 없고 극과 극의 대립이 유별난 한국 사회가 유념할 만하다.
균형이 필요하다. 반려견을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는 마음과 잠재적 위험물로 보는 견해가 공존하려면 서로의 차이를 직시하고 존중해야 한다. 오늘의 행복을 위해 쓸 것은 쓰되 내일에 대비해 저축하는 것 역시 소중한 것처럼. 그때그때 사회적 의제에 극도로 단순화된 의견에 대다수가 휩쓸리는 사회는 위태롭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