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도쿄 특파원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반. 문을 열자 주인이 무심히 대기표를 건넸다. 근처 커피숍에서 신문을 보다 오전 11시에 가자 열댓 명이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한 시간 더 줄을 서 기다렸다.
지난주 갑자기 쉬게 된 날, 가보고 싶던 도쿄(東京) 스가모(巢鴨)역 인근 라멘(라면)집을 찾았다. 라멘 팬의 성지로 꼽히는 ‘쓰타(조·담쟁이덩굴)’. 세계 최고 권위의 미슐랭 가이드가 115년 역사에서 처음 별을 준 일본 라멘집이다. 2년 연속 별을 받았지만 주인은 카운터 9석뿐인 식당을 1석도 늘리지 않았다. 1000엔(약 1만 원) 안팎으로 미슐랭 스타 요리를 즐길 수 있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린다.
부드러운 감칠맛에 향긋함이 더해진 절묘한 밸런스. 육수에는 와카야마(和歌山)현 삼나무통에서 2년 숙성한 간장 등 3종류의 간장을 블렌딩했고 명품 토종닭 3종에 조개 다시마 야채 등으로 풍미를 더했다고 했다. 그 위에 최고급 이탈리아산 송로버섯(트러플) 오일을 뿌렸다. 레드와인에 절인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는 잡내가 전혀 안 났다. 명품 밀가루 3종을 혼합해 만들었다는 면도 탄력과 강도가 적당했다. 반숙 계란은 아오모리(靑森) 토종닭의 유정란이었다.
테이블 위엔 일본 라멘 식당에 흔히 놓인 마늘 후추 등 양념이 전혀 없었다. 최적의 상태로 서빙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혼신의 한 그릇’이라는 메뉴판 설명이 과장이 아니었다. 원목 테이블로 장식된 실내에는 재즈 음악이 잔잔히 흘렀다.
그저 라면 한 그릇일 뿐인데,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인 오니시 유키(大西祐貴) 씨의 블로그 제목은 ‘생애 라멘과의 단판 승부’다. 의류회사를 다니다 5년 전 식당을 차린 그는 “라멘이야말로 일본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신념으로 메뉴 개발에 매달렸다. 그리고 평론가들이 ‘예술품에 가깝다’고 경탄하는 한 그릇의 라멘을 완성했다. 그의 바람대로 쓰타는 싱가포르, 대만에 지점을 내며 세계에 일본 라멘을 알리고 있다.
근대화 시기 차이나타운에서 유래했다는 라멘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중음식 중 하나다. 쇼유 미소(된장) 시오(소금) 돈코쓰 등 종류도 다양하고 소스에 찍어 먹는 쓰케멘, 기름장에 비벼 먹는 아부라소바 등 먹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지역마다 특색을 갖춘 라멘이 있다.
미슐랭 가이드 일본판에는 라멘 섹션이 별도로 있다. 올해 판에는 쓰타를 포함해 두 곳이 별을 달았고 미슐랭 예비군이라고 할 ‘비브 구르망’(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27곳이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에서 라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 한국인의 솔 푸드인 떡볶이, 수제비, 칼국수가 일본 라멘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식당을 나오면서 인생을 걸고 만드는 이들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