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넛지 경제학
운전자의 연비 절감 주행을 유도하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차량 내 디스플레이. 현대자동차 제공
쇼핑 동선 등 고객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대형마트가 통일성을 깨고 불친절한 상품 배치를 한 이유는 뭘까. 궁금증을 풀어준 건 아이와 함께 온 한 남성이었다. 스낵코너에서 과자를 고르는 아이를 지켜보던 그는 바로 옆 차량용품 전문점을 발견했다. 남성은 아이가 과자를 고르는 동안 핸들커버를 살펴보더니, 바로 옆 운동용품 코너로 시선을 옮겼다. 허공에 대고 몇 번 휘두르던 배드민턴 라켓은 결국 남성의 쇼핑카트에 담겼다.
얼핏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치밀한 매장 설계가 고객을 또 다른 소비로 유도한 사례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맞벌이 가구 증가로 장을 보는 남성이 늘면서 식품 판매대 옆에 아빠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제품들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파리 스티커가 붙어 있는 암스테르담 공항 소변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일러 교수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라는 말이나 파리를 겨냥하라는 문구가 없어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을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상품진열대 대신 고객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롯데마트 양평점 1층.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매장 안으로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소비 행위를 유도하는 넛지 마케팅의 하나다. 롯데마트 제공
식품매장 입구에 배치된 제철 과일도 비슷하다. 고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매장 초입에 형형색색 과일들을 둬 매장이 밝고 신선해 보이는 효과를 낸다. 철마다 과일 종류를 바꿀 수 있어 새로 단장한 느낌도 준다. 주류코너는 대개 매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특정 상품만 구입하려고 매장을 찾은 고객들을 맨 안쪽까지 들어오게 해 다른 상품들을 노출시키려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에게 승부욕이나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넛지 마케팅도 늘어나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 계기판을 에코(Eco)와 파워(Power) 모드로 나눠 고연비(연료소비효율) 운전을 유도하는 식이다. 액셀을 세게 밟거나 거칠게 운전하면 계기판 바늘이 에코 게이지를 벗어나서 운전자는 좀 더 조심스럽게 주행하게 된다. 현대자동차는 2011년 쏘나타 하이브리드에 이를 처음 적용한 뒤 아이오닉, 그랜저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모델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모바일 내비게이션 ‘T맵’에 게임형 프로그램을 설치해 안전운전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과속이나 급정거 급출발 등을 하면 점수를 깎고 등수를 매겨 자신의 점수를 다른 이용자들과 비교까지 해준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넛지 효과는 인간이 합리적 결정을 한다는 전통 경제학과 달리 덫과 오류에 빠진다는 걸 전제로 한다”면서 “정부는 공익적 목적에서, 기업은 마케팅 기법으로 소비자 행태 변화를 유도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이어 “넛지 마케팅은 기존 광고나 마케팅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어서 앞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승현 byhuman@donga.com·곽도영·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