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신고리 찬반 팽팽할 것
공론화 기간에 한국갤럽이 실시한 4차례 여론조사에서 찬반 비율은 모두 오차범위 안이었다. 18일 리얼미터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건설 중단 43.8%, 재개 43.2%(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3%포인트)였다. 공론화위가 최종 조사문항에 ‘한쪽을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냐’란 질문을 포함시켜 오차범위를 줄이려고 했지만 밀어내기 식으로 결론을 도출했다고 해서 신빙성이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박빙의 결과를 손에 쥐면 양측 모두 승복하지 않고 반발 강도를 높일 것이다.
정작 국민 의사를 물어서 결정해야 할 탈원전을 대통령이 먼저 선언하고 그에 연계된 하부 사안인 원전 공사 중단 여부를 공론조사에 떠넘긴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입장이 없다”고 한다면 탈원전 홍보대사 같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행보는 뭔지, 정부가 진짜로 국민 의사를 묻고자 한다면 왜 국민투표를 안 하고 공론조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공론조사 무용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공론조사는 논란이 큰 국가적 현안을 시민사회가 다룰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시험대가 될 수 있고, 실제로 합숙토론에 대상자의 98.5%가 참석해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주제가 맞지 않았다. 공론 실험을 하기에 원전 문제는 산업과 에너지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방대하고 사안이 복잡하다.
공론위 활동이 정치적 냉소를 거두고 숙의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시민참여단은 합숙토론에서 자료의 진실성을 검증하지 못한 채 수동적 자세로 찬반 전문가의 일방적인 주장을 들었다. 전문가란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함께 혼란만 키운 기간이었던 셈이다.
숙의란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기’로 숙의 전과 후에 공적(公的) 이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실제로 1996년 영국에서 군주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2002년 불가리아에서 사형제를 유지할 것인가를 두고 숙의를 시행했더니 숙의 전과 후의 의견이 크게 달라졌다.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여론 동향을 보면 지진 불안감이 큰 대구 경북 부산에서 오히려 건설 재개 찬성률이 높은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원전 문제가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정치성향에 따라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론화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것은 참고용일뿐 정부는 그 결정을 추종해서는 안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