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민간업체 절반 거의 사용안해… 年 37억 운영비 꼬박꼬박 걷어가 홍보비 7억원은 이통사가 부담
직장인 김용수 씨(31)는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 가입하려다가 벽에 부딪혔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탓에 개인인증 수단으로 주민등록번호 대체 수단인 아이핀을 쓰려 했지만, 아이핀 가입 또한 휴대전화 인증이 필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유료인 범용공인인증서를 쓰거나 대면(對面) 인증을 거쳐야 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새로 사서 회원가입을 마치고 나서야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용과 가입이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아이핀이 갈수록 외면받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등 민간업체 상당수는 아이핀이 없어도 회원 유치 등에 별문제가 없을 정도로 아이핀이 무용지물로 전락했지만 이들 업체는 정부가 권장하는 아이핀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비를 부담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의 아이핀 홍보에 대한 예산 낭비 논란도 일고 있다. 아이핀은 온라인에서 주민번호를 대신해 사용하는 개인 식별 번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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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최근 1년간 단 한 번도 아이핀 사용실적이 없는 업체가 2783개(올해 8월 기준)로, 전체의 37.7%에 달했다. 1년간 아이핀 인증이 있더라도 100건에 못 미친 업체 또한 1512개(20.5%)였다. 아이핀 사용실적이 없거나 극히 저조한 업체가 절반이 넘는다는 의미다.
온라인 쇼핑몰 등 영세업자 입장에선 회원가입에 필요할 것 같아 아이핀을 적용했더니 실제로는 도입 효과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러나 사업자들은 아이핀 실적이 거의 없더라도 이를 개인인증 수단으로 적용하면서 연간 최소 50만 원 이상의 이용료를 내고 있다. 아이핀이라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연간 37억 원에 달하는 유지 비용이 드는데, 아이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본인인증 기관들은 이를 민간업체로부터 이용료를 받아 충당한다.
온라인 박스 쇼핑몰을 운영하는 김미애 씨(29)는 “주민번호 대신 믿고 쓰라며 정부가 권하는 서비스라서 아이핀을 회원가입 인증 수단으로 도입했는데, 우리처럼 월간 신규 회원 가입자가 100명 선인 업체도 필요한 수단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에 적용 가능한 개인인증 수단이 공인인증서와 휴대전화 인증, 아이핀밖에 없어서 하나를 포기하기도 어렵다. 다양한 인증 수단이 개발되고 있는데도 정부가 개인인증을 아이핀에 묶어두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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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핀은 주민등록번호 유출 피해 우려가 커지자 이를 대체할 온라인 인증 시스템으로 정부가 도입했다. 정부가 2006년 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민간부터 적용하기 시작해 공공시스템으로 차츰 적용 범위를 넓혔다. 정부는 2012년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자 아이핀 사용을 권장했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폰 보급과 온라인 뱅킹에 따른 공인인증서 활용 증가로 아이핀은 점차 외면받는 추세다. 지난해 휴대전화 개인인증 건수는 10억 건을 넘어섰다. 반면 아이핀 인증건수는 4003만 건에 불과해 휴대전화 개인인증 건수의 4%에도 못 미친다.
비용 낭비 논란도 일고 있다. 유지 비용과는 별도로 매년 아이핀을 비롯한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을 점검 및 홍보하기 위한 예산도 15억 원에 이르는데 이 중 7억 원은 통신 3사에, 8억 원은 민간 아이핀에 집행되고 있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정책국장은 “정부가 만든 아이핀 인증체계에 대한 비용이 민간에 준조세처럼 작용하고 있다”며 “정부는 인증 가이드라인 정도만 정해주고 인증 사후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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