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첫 경제사령탑으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발탁했을 때 청문회에서 개룡남(개천에서 태어나 용이 된 남자)이 화제가 됐다. 모 국회의원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의 상징 같은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내자 김 부총리는 “개천에서 (난) 용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씀”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무허가 판잣집의 소년 가장 출신. 11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상고를 나와 은행에서 일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녔고 행정고시와 입법고시까지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불우한 환경에서도 꿈을 이룬 사람들이 쏟은 땀과 눈물이 있었다. 부와 지위의 대물림이 고착되면서 이제는 ‘개천 용’ 찾기도 힘들어졌다. 오죽하면 ‘통장에서 용 났다’는 말이 생겼을까. 실제 연구에서도 이런 현실이 드러났다. 서울대 경제학부 주병기 교수, 박사과정 오성재 씨가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계층 이동에 성공한 사람의 수가 최근 13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 연구팀이 자체 개발한 ‘개천 용 불평등 지수’를 통해 살펴본 결과 부친의 직업과 학력에 따라 기회의 불평등이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층 이동이 힘든 미국과 이탈리아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