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68년 1월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를 모토로 공산당의 자기반성과 일련의 개혁 정책이 추진되었다. ‘프라하의 봄’이라 부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과정에서 민중과 지식인들은 한목소리로 공산주의자들을 질타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렇게 변명했다. “우린 몰랐어! 우리도 속은 거야! 우리도 그렇게 믿었어! 따지고 보면 우리도 결백한 거야!”
이에 따라 ‘프라하의 봄’에 진행된 체코슬로바키아의 ‘적폐 청산’ 논의는 사법 살인과 같은 국가적 범죄를 공산주의자들이 모르고 자행한 것인지, 몰랐던 척하는 것인지를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이러한 논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 외과의사 토마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문제의 본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가 무지에서 어머니와 동침하는 패륜을 저질렀지만, 무죄를 항변하지 않고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듯, 국가와 민중의 삶을 망친 공산주의자들 역시 설령 자신의 말대로, 그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결코 결백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무지와 광신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권좌에 앉은 자의 광신과 독선은, 무지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범죄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프라하의 봄’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불길이 이웃 공산주의 국가에 옮겨붙을 것을 우려한 소련이 20만 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을 앞세워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으로 점령함으로써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니체의 ‘영원 회귀’를 화두로, 토마시는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 인간이 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 질문한다. 그가 제시한 해답은 “낙관주의자는 경험이 거듭될수록 인간 역사가 피를 덜 흘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이며, 비관주의자란 그런 것을 믿지 않는 자”라는 것이었다.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